등록 : 2018.05.15 09:40
수정 : 2018.05.15 15:59
[창간30 특별기획/ 노동 orz]
1부 노동OTL 10년, 다시 찾은 제조업 현장 ①불면노동자의 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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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솔 기자의 근무 이력과 월급명세표. *이미지를 누르면 확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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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장노동 한달…컨베이어 벨트에 저주를 뱉었다 “망해라” 에서 이어짐
누구에게나 평등한 9호기 기계의 속도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4개월여 일한 한 언니가 1~10호기의 속도는 모두 ‘25’에 맞춰져 있다고 했지만 ‘전설’같은 이야기를 전할 뿐이었다. 기계를 만지는 대부분의 언니들은 속도를 조절하는 버튼이 어디 있는지 몰랐다. 최고 속도와 최저 속도, 평균 속도는 베일에 싸여있었다. 그래서 기계는 누구에게나 평등했다. 일한 지 반년이 넘은 언니와 기자와 같은 초보자는 모두 같은 속도로 일했다. 기계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다.
11호기에서 일하던 3월2일, 기계를 점검하기 위해서 컨베이어 벨트를 멈춘 상태였다. 컨베이어 벨트를 들어올려 오른쪽으로 잡아끌던 차 컨베이어 벨트가 되돌아나가는 부분에 오른손 중지와 약지가 끼고 말았다. ‘악’ 내뱉은 비명이 주변 기계음에 파묻혔다. 약지 손톱 밑 살점이 3㎝ 정도 들려 피가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렸다. 기계를 봐주던 언니가 붕대를 반 롤이나 칭칭 감아 간이 깁스를 만들어줬다. “나도 똑같이 다친 적 있어. 낫는 데 3주 정도 걸리더라.” 손가락이 버벅대니 작업 속도는 느려졌고 처리 못 한 제품이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산을 이뤘다. 보다 못한 언니가 말했다. “속도를 5 정도 낮춰 줄게.” 기계에 속도를 조절하는 기능이 있고 작업자가 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조장 언니를 비롯해 일한 지 반년이 넘은 언니 몇몇만이 기계의 속도 조절법을 알고 있었다.
일이 손에 익은 뒤엔 때때로 지루함이 찾아왔다. 시행착오를 거쳐 불필요한 움직임을 덜어내면 머리가 아닌 손으로 일하는 시점이 찾아온다. 기계가 나이며, 내가 기계가 되는 그 순간,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는 건 그 자체가 고통이다. 희진(22)이는 왼손에 손목시계를 찬 기자에게 의아한 듯 물었다. “언니, 시계 왜 차요? 시간 보면 오히려 짜증나지 않아요?” 물론 그런 지루함도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익숙해졌다 싶을 때 기계 속도는 ‘더 빠르게’ 조정됐다. 전숙희(45) 언니가 말했다. “내가 일은 곧잘 하잖아. 그러니까 아예 최고 속도로 높이더라고. 원래 세 타임은 빡세게 뛰면 팔이 안 올라가거든? 그날은 한 타임만 했는데도 팔이 움직이질 않더라고.”
12일 새벽 1시 ‘점심’을 먹고 탈의실에 쪼그려 앉아 한숨 돌리던 차다. 오른쪽 손목에 3㎜ 높이로 솟아오른 물혹을 발견했다. 손목을 구부리니 손목 한가운데가 볼록 튀어나왔다. 아침 9시 퇴근하자마자 병원을 찾았다. 공단 근처엔 기계에 절단되거나 짓눌린 손만 전문으로 진료하는 ‘수부 전문 병원’이 있었다. 대기실에서 꾸벅꾸벅 졸다 진료실로 들어갔다. 결정종이라는데 관절에 무리가 가면 생긴다 했다. 어깨와 팔, 손목, 손가락 등 상체를 쉴 새 없이 움직이다 보니 마스크팩을 쥔 채 포개고 접고 돌리던 손가락의 마디마디가 퉁퉁 부었다. 지문 인식으로 잠금상태를 해제했던 핸드폰은 어느새 내 엄지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물혹은 일을 그만둔 뒤에도 한 달 가까이 없어지지 않았다.
생산직 노동자(설문 응답자 109명) 중 근골격계 증상이 적어도 1주일 이상 지속된 사람의 비율은 90%에 이른다(남동공단권리찾기사업단 노동자119, 2016년). 근골격계 질환이란 신체 부위를 반복적으로 부적절하게 사용해서 생기는 ‘골병’이다. 어깨, 허리, 팔·다리 신경·근육 등에 나타난다. 파김치가 돼 점심을 먹을 때다. 팔이 부들부들 떨려서 밥을 푸지 못하고 버벅댔다. 배식대에서 국을 퍼주던 조장 언니가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국 푸는 속도보다 밥 푸는 속도가 더 느리네.”
2주 주간근무 뒤 2주 야간근무
낮에 자려 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작업장선 핸드폰 금지 ‘세상과 단절’
0시30분에 점심을 먹자 ‘속 더부룩’
2시간마다 10분씩 쉬는 시간엔
탈의실 휴식을 위해 줄달음쳐야 했다
속절없이 꾸벅 3월6일 새벽 2시30분 첫 하품이 나왔다. 야간조로 접어든 첫날이었다. 전날인 5일 저녁 8시30분에 일을 시작해 어느새 자정을 넘겼다. 마스크팩을 들여다보던 눈꺼풀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평소 수면 패턴에 비춰봤을 때 영화라도 봐야 깨어있을 수 있는 시각이다. 퇴근은 아직 6시간 가까이 남았다.
야간근무 경험이 있는 언니들은 4일 밤을 꼬박 새우고 5일 오후 눈을 붙이고 왔다. 전날 밤을 새우는 데 실패한 기자는 출근 전 한숨도 자지 못했다. 새벽 4시30분 빚 독촉하듯 밀린 잠이 달려들었다. 저항할 새 없이 고개가 고꾸라졌다. 안 되겠다 싶어 일어선 채 작업했더니 이번엔 허리가 고꾸라졌다. 새벽 5시30분께 일어선 채 가수 트와이스의 ‘우아하게’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기계 소음에 파묻혀 노랫소리가 산산이 조각났다. 순간, 오른손이 손가락이 끼었던 그 지점에 닿았다. 차가운 금속성에 섬뜩한 악몽처럼 그날의 고통이 떠올라 눈이 번쩍 떠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무서운 악몽이 그저 달콤한 꿈으로 변하며 꾸벅. 속절없이 꾸벅. 철강노동자를 대상으로 사고가 날 뻔했던 경험이나 사고로 실제 다친 경험의 횟수를 물어보니 교대근무자들이 주간고정보다 2배 정도 횟수가 많았다(전국금속노동조합 등, 2013년).
생활 패턴은 출·퇴근 시간을 중심으로 180도 바뀐다. 아침은 저녁이 되고, 저녁은 아침이 된다. 야간조로 일한 2주 동안 평일 4시간 이상 잔 적이 없다. 깊게 잠들 수도 없었다. 낮에 자는 4시간과 밤에 자는 4시간은 다르다. 숙면이 어제와 오늘을 구분하는 실선이라면, 토막잠은 지난 출근과 다가올 출근을 구분하는 흐릿한 점선과 같았다. 퇴근길 동료들은 “내일 봐”라고 했다가 ‘아차차’ 웃고는 “이따 봐”라고 말하곤 했다.
잠만 부족한 게 아니었다. 대화도 부족했다. 인천 공단 지역 출퇴근을 위해 경기 부천시 친구의 집에 얹혀살았다. 야간조로 일하고 퇴근하면 집은 항상 텅 비어있었다. 한낮의 원룸은 고요했다. 친구에게 카톡을 보내봤자 일에 바쁜지 답은 한참 뒤에 왔다. 평일 저녁 약속은 당연히 모두 취소됐다. 미뤄둔 약속 세 건은 일요일로 몰아 해치웠다. 주변 사람들과의 타임라인이 포개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포기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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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저녁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반월공단에서 통근버스를 타고 출근한 야간근무자들이 공장으로 향하고 있다. 안산/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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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이거 실화냐.’ 3월5일 자정 넘어 잠시 쉬는 시간, 쌓여있는 카톡을 차례로 확인하다 뭔가 일이 터졌다는 걸 직감했지만, 궁금증을 풀지 못한 채 다시 작업장으로 향했다. 작업장 안에선 핸드폰을 쓸 수 없었고 탈의실에선 인터넷이 터지지 않았다. 공장에 들어서는 저녁 8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 퇴근할 때까지 반나절은 바깥세상과 단절되는 셈이다. 그날 공장 안에서는 누구도 ‘안희정’이라는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안 전 지사의 성폭행 의혹이 폭로됐다는 사실은 아침 지하철 퇴근길에서 알게 됐다.
기계는 밤에도 쉬지 않고 돌아간다. 작업장에 설치된 기계는 10억대를 호가한다 했다. 멈춰 있는 기계는 쇳덩어리에 불과하다. 비싼 기계일수록 ‘본전’을 뽑기 위해서 공장을 하루 24시간 365일 돌려야 한다. 하루 12시간씩 20대의 기계를 돌리는 것보다 24시간 10대의 기계를 돌리는 게 더 ‘싸게’ 먹힌다. 50%가 가산된 야간근로수당을 주더라도 사람을 부리는 비용이 더 적다. 한 푼이 급한 노동자 입장에서도 야간수당은 쉽게 포기하기 어려운 유혹이다. 기계와 노동자의 서글픈 ‘윈윈’이다.
<하루 2500번 반복 동작…한순간 손가락이 기계 틈새에 ‘악!’> 기사로 이어집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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