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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02 18:26 수정 : 2005.02.02 18:26



기아차 충격 이어 ‘반민주적’눈총

‘내부기강’여론…개혁 기회 될수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출범 10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산하 조직인 기아자동차 노조의 취업비리 연루 사건으로 도덕성에 흠집이 나 있는 마당에 2월1일 임시 대의원대회의 폭력 사태로 정체성에도 큰 타격을 받게 됐다.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마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조직 내부구조의 취약함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의 한 간부는 “민주화와 사회개혁의 중심세력으로서 그동안 쌓아온 자부심과 위상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라고 최근의 사태를 개탄했다.

◇ 민주노총의 고립 우려=두차례 대의원대회의 파행은 소수 반대세력의 물리적 반발 때문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민주노총 현 집행부의 책임 문제가 거론되지 않을 수 없다.

사실상의 노사정위원회 복귀를 뜻하는 ‘사회적 교섭’은 이수호 위원장이 지난해 2월 조합원들로부터 선택을 받을 때 내건 핵심 공약이다. 이른바 중층적 교섭틀을 통해 노동 현장의 목소리를 사회적 의제로 채택하겠다는 게 이 위원장의 약속이었다. 그러나 이를 1년이 지나도록 관철시키지 못한 가운데 주40시간제 도입, 공무원노조법 제정 등 굵직굵직한 현안 과제들은 민주노총이 배제된 채 추진돼 왔다. 민주노총 스스로 대화의 틀을 벗어나 장외투쟁 공간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민주노총이 시간을 끌면 끌수록 상황은 더 불리하게 되어 있다. 김대환 노동부 장관은 2일 기자간담회에서 “더는 한 집단(민주노총)의 시계에 노동행정을 맞출 수 없다”며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고,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방안(로드맵)’도 연내 입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여기에 맞서 총파업까지 동원한 총력투쟁으로 저지하겠다고 결의했지만, 실제로 그만큼의 준비와 내부 동력이 있는지 지도부조차도 회의적이다. 또 스스로 대화를 거부했다는 점 때문에 국민 여론의 지지도 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박태주 노동교육원 교수는 “민주노총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혀 놓은 가운데 정부와 섣불리 전면전에 나섰다가는 정치적, 정책적 배제 차원을 넘어 사회적으로도 고립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 내부 개혁의 계기가 될 수도=민주노총 임시 대의원대회가 폭력으로 파행을 빚은 1일 저녁 이수호 위원장은 사퇴 의사를 밝혔다. 사회적 교섭 안건의 제안자로서 대의원 의결이 무산된 데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날 대의원대회 이후 일반 조합원과 대의원들한테서 이수호 위원장에 대한 지지 여론이 오히려 더 높아지는 추세다. 상대적으로 현 집행부 반대세력에 대한 비난 여론은 들끓고 있다. 이수봉 민주노총 교육선전실장은 “대의원대회의 파행을 계기로 공조직의 기능을 폭력으로 마비시키려는 행위를 엄단하고 내부 기강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는 조합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오는 21일께 임시 대의원대회를 다시 열어 위원장 재신임 여부와 함께 사회적 교섭 안건을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배규식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그동안 민주노총 내부의 잘못된 관행과 문화가 이번 사태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며 “이번 임시 대의원대회가 현장 조합원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의사결정 구조와 회의 진행 방식을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 1일 오후 서울 영등포 구민회관에서 열린 민주노총 임시대의대회에서 사회적 교섭안건에 대한 표결처리를 반대하는 일부대의원과 참관인들이 단상을 점거하자 이수호 위원장(가운데)이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은채 생각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 ‘사회적 교섭’거부세력

"자본에 포섭" 현장파 반대논리

정리해고 이슈화로 동조세력 30%선
중앙파 "필요성 인정하지만 더 논의"

지난 1일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에서 폭력까지 불사하며 사회적 교섭 안건 처리 방해를 주도한 것은 공공연맹, 금속연맹, 사회보험노조,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등의 일부 대의원과 참관인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은 자신들이 속한 연맹이나 조합 차원이라기보다 민주노총 안 3개 정파 가운데 하나인 ‘현장파’로 분류되는 반공개 조직 ‘노동자의 힘’, ‘메이데이 포럼’ 등의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이들 반공개 조직은 이날 대회장에서 벌어진 사회적 교섭 안건 저지 싸움에 대학생들이 다수 참여한 데서도 입증되듯이, 학생운동권과도 연계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날 표면에 드러난 ‘사회적 합의주의 노사정 담합분쇄 전국노동자투쟁위원회’(전노투)라는 단체는 이름에서도 나타나듯이 이수호 위원장이 사회적 교섭 참여를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것을 계기로, 사회적 교섭기구 참여를 저지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이들이 이날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대의원대회를 유회시킨 것은 “사회적 대화기구는 신자유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고, 여기에 참여하는 것은 자본에 포섭되는 것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사회적 대화 참여는 ‘민주노총의 개량화’이며,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막아야 하는 과제인 셈이다.

민주노총 내 또다른 계파인 ‘중앙파’도 ‘국민파’ 출신인 현 이수호 집행부의 사회적 교섭에 반대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들은 “사회적 교섭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시기가 문제”라는 견해라는 점에서 현장파와 구분된다. “지금은 사회적 대화보다 정부가 강행처리를 공언하고 있는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에 집중해야 할 시점”이라는 정세 인식이다.

1980년대 운동권의 민중민주(PD) 노선에 같은 뿌리를 두고 있는 중앙파와 현장파의 사회적 교섭에 대한 시각 차이는 사회변혁 투쟁에 대한 관점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노동계 내부 사정에 밝은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대기업 공장의 현장 조직을 중심으로 하는 현장파는 의회를 통한 개혁 가능성을 부정하고, 농민·도시빈민 등과의 계급적 연대를 통해 자본과 비타협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관점에 서 있다. 반면 중앙파는 전 민주노총 위원장인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과 심상정 의원 등의 중심적 인물로도 알 수 있듯이, 의회 진출을 통한 변혁을 추구한다. 강경파인 현장파는 평소 민주노총 대의원의 10% 정도를 장악하고 있으나, 정리해고 등이 이슈화하면서 노사·노정 대립이 첨예화될 때는 동조세력이 30% 가까이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사회적 대화기구 참여에 반대하거나 소극적인 데는 현실적 이해관계도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민주노총 내의 많은 단위노조들은 대기업이나 공기업 노조들이다. 이들은 지금까지 막강한 자체 교섭력을 활용해 회사 쪽을 상대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초기업 단위로 진행되는 사회적 대화기구에 참여하는 것은 자신들의 행동을 제약할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순빈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이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간부회의를 하기 위해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민노당‘친정’걱정

"노사정위 문제 어려우면 뒤로 미뤄야"

기아차 노조 취업비리 파문에 이어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폭력사태 등 노동운동계에 악재가 겹치자 민주노동당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당과 민주노총이 상호 ‘독립적 관계’인만큼 ‘불개입’이 원칙이지만, 노동자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으로서 뒷짐만 지고 있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을 지낸 권영길 의원은 2일 “노동자의 피와 땀, 눈물로 건설한 민주노총에서 폭력행사만은 어떤 이유로도 안 된다”며 “빨리 전열을 정비해 민주적 절차에 따른 의견수렴을 이루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당의 직접 개입은 안 되지만 애정 어린 충고는 필요하다고 본다”며 “곧 민주노총 지도위원들을 만나 상의하겠다”고 덧붙였다.

역시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인 단병호 의원은 “이런 표현을 쓰고 싶지 않지만 ‘유감스럽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며 “자칫 국민들에게 부정적 모습으로 비쳐, 민주노총 발전에 걸림돌이 될까 우려한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사정을 잘 아는 당 관계자는 “폭력사태는 노사정위 참여 문제에서 의견차를 좁히지 못한 결과”라며 “비정규직 투쟁 등 시급한 현안이 많은만큼, 일단 합의가 어려운 문제는 미뤄두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충고했다.

정광섭 기자 iguassu@hani.co.kr

네티즌 격앙-당부 두모습

"폭력꼴통" "성숙계기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폭력사태로 무산된 데 대해 네티즌들은 2일 일제히 우려와 분노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민주노총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1일 밤부터 2일까지 수백건의 글이 쏟아지고 있다. 아이디 ‘참담해서’는 “현 집행부의 반대편에 서 있는 그(강경파)들이 진정 동지적 관계라면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되며 폭력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했는지 몰라도 민주노총의 사회적 책무와 지지 확보에는 명백히 실패했다”며 “이번 폭거는 민주노총이라는 노동계급운동이 발전해야 우리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는 역사적 상식을 무시했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 조합원이라고 밝힌 아이디 ‘한탄’은 “민주노총의 강경세력은 ‘수구꼴통’이 아니라 ‘폭력꼴통’이라고 말하고 싶다”며 “한솥밥을 먹는 집행부나 대의원끼리도 이런 식의 폭력이 난무하니 어떻게 경영자와 대화가 되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일부는 민주노총 대신 ‘폭력노총’으로 이름을 바꾸라는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번 사태를 민주노총이 한층 더 성숙할 수 있는 계기로 삼으라는 당부의 목소리도 많았다. 인터넷한겨레 토론방에서 아이디 ‘한민주’는 “이번 기회에 민주적 절차를 방해하는 폭력세력은 그 누구라 해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며 “비폭력, 인권 그리고 양심을 존중하는 국민과 대다수 노조원의 뜻을 살리고 민주노총이 한층 더 성숙되고 발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디 ‘흘러간유행가’는 “(이번 사태가) 민주노총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념타령과 정체성을 담보로 한 상대 몰아세우기의 연장선은 아니었는지 돌아봐야 할 것”이라며 “더 늦기 전에 자각과 많은 반성 위에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새롭게 태어나는 노동운동이 돼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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