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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원칙’ 헌신짝…사용자 편들기로 기울어
정부가 11일 대한항공 조종사노조 파업 나흘 만에, 과거 독재정권들도 꺼리던 긴급조정권을 또다시 꺼내 들었다. 재계는 정부의 ‘신속한’ 개입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지만, 노동계는 정부가 헌법상의 권리인 파업권을 제약하는 ‘극약처방’에만 의존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적극적 중재 노력없이 여론 편승해 ‘극약처방’
‘파업권 무력화’ 남발…중립적 학자들도 우려 긴급조정권 발동 이유=김대환 노동부 장관은 이날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의 파업으로 723편이 결항되고 직·간접 피해액이 1894억원에 이르러 국민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며 ‘발동’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또 파업 나흘 만에 긴급조정권이 발동된 점과 관련해 “10일까지 피해 규모는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파업(2208편 결항, 매출손실 3233억원)보다 적지만, 14일까지 파업이 지속되면 직·간접 피해 규모는 5325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고 말했다. 재계도 수출물량이 집중되는 연말에 화물기 결항에 따른 휴대전화ㆍ반도체 등 정보기술 첨단제품의 수출 차질이 심각하며, 시간이 갈수록 피해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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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길로 치달은 노동행정=노동부는 “노사 자율 교섭·타결 가능성이 없는 가운데 더이상 ‘긴급조정권 발동’을 미루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의 안일한 대응과 성급한 개입이 ‘노사 자율 원칙’을 앞장서 훼손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실제 정부는 파업이 시작되기도 전인 7일 ‘긴급조정권 발동’을 ‘공개 천명’했다. 이후 매일 같이 “긴급조정권 발동”을 경고했다. 적지 않은 노동 전문가들은 이런 정부의 태도에 대해 이른바 ‘귀족 노조’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에 편승한 노골적인 사용자 편들기라고 비판했다. 정부 한쪽에서도 노동부가 노사 사이의 성실한 중재자로 구실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정부 관리는 “파업 나흘 만에 긴급조정권을 발동할 정도의 사안이었다면 파업 이전부터 적극적인 중재 노력을 폈어야 했으나, 그런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율 원칙’ 실종=개·폐 대상으로 거론돼온 ‘긴급조정권’과 ‘직권중재’가 현 정부에 의해 ‘남발’되는 데 대해 중립 성향의 학자들마저 우려를 하고 있다. 긴급조정권은 헌법상 권리인 파업권을 제한한다는 점 때문에 역대 정권에서도 1969년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와 93년 현대자동차 파업 단 2차례만 발동됐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서는 8월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노조 파업에 이어 불과 4개월 만에 2차례나 발동했다. 노동자의 지지를 얻어 정권을 잡은 노무현 정부에 대해 노동계가 배신감을 느낄 만한 일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직권중재와 긴급조정권은 노사관계의 기본인 노사자율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점에서 노사관계 선진화방안에서도 개폐가 논의돼온 사안”이라며 “긴급조정권의 잇단 발동은 우려스런 일”이라고 말했다. 양상우 기자 y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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