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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29 19:02 수정 : 2005.12.29 19:02

뉴스인물 -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박영제씨

“20년 동안 다시 작업복을 입고 출근할 날을 기다렸습니다.”

1986년 해고 당시 20대 총각이었던 박영제(48·?5c사진) 전 민주노총 부산본부 총무국장이 쉰살을 눈앞에 둔 새해 1월1일 옛 직장인 한진중공업에 복직한다.

그는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공장으로 바뀐 옛 대한조선공사에 81년 입사해 선대조립과에서 선체조립(취부) 일을 했다. 86년 8월 해고될 때까지는 지극히 평범한 노동자였다. 그해 5월 작업장에서 떨어져 전치 8주의 중상을 당하는 바람에 일을 쉬고 있던 그는 같은 부서의 대의원이던 김진숙(46·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이정식(47)씨 등을 도와 ‘대의원대회를 다녀와서’라는 유인물을 배포했다.

회사는 경위서를 요구했다. 그가 거부하자 해고 통지서가 날아왔다. 해고의 사유는 회사 명예 실추와 상사 명령 불복종이었다. 김씨와 이씨도 각각 7월14일과 8월8일 해고됐다.

노조 유인물 뿌리다 잘린뒤
평범한 노동자서 노동운동가로
20대 청년, 쉰살되어 돌아와

중풍에 걸려 병석에 누워 있던 어머니를 모시고 단 둘이 살던 그로서는 당장 살길이 막막했다. 복직을 위한 출근투쟁을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노동운동가로 변해갔다.

다음해 6월 민주항쟁의 바람을 타고 한진중공업 노조를 어용노조에서 민주노조로 바꾸는 성과도 거뒀다. 그러나, 복직의 꿈을 이루는 것은 쉽지 않았다. 대한조선공사를 인수한 한진중공업은 “대한조선공사에서 해고된 사람까지 책임질 수는 없다”고 버텼다.

노동자가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노조 조직화와 민주화가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88년말 출근투쟁을 중단하고 부산지역 노조연합회 상근 사무차장으로 들어갔다. 이후 그는 지난 3월 복직 준비를 위해 민주노총 부산본부 총무국장에서 물러날 때까지 부산지역 노동조합총연합 사무차장, 민주노총 부산본부 사무차장 등을 맡으며 부산지역 노동운동의 조직화에 애썼다. “가장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2001년초 택시운전을 시작했으나, 1년 남짓 만에 민주노총 부산본부 총무국장으로 불려왔다.


쉼없는 복직투쟁과 2003년 10월 김주익 노조위원장, 곽재규 조합원의 죽음이라는 희생의 결과로 한진중공업은 그해 11월 마침내 해고자 단계적 복직 등 30개항에 합의했다. 그 약속에 따라 20년만에 옛 직장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박씨와 함께 해고됐던 이정식씨도 새해 1월1일 복직한다. 그러나 김진숙씨의 복직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박씨는 “두 열사의 죽음과 많은 조합원들의 단결투쟁 덕택에 복직되는 것이기에 안타깝고 마음이 무겁다”며 “현장상황도 20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기 때문에 당장은 현장 적응을 위해 신입사원의 자세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씨는 전교조 해직교사였던 강갑례(44·동래고 교사)씨와 92년 결혼해 현재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4학년인 두 딸을 두고 있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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