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창간] 한겨레는 왜?
<한겨레>도 다른 신문과 다를 게 없다고 말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겨레는 신문 곳곳에 다른 신문에서 볼 수 없는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최초의 한글 전용, 가로쓰기 편집 등은 눈에 확 들어오는 차이지만 간혹 한겨레 가족들도 잘 모르는 게 있답니다. 앞으로 하나씩 드러내 보여드리려 합니다. 2004년까지 언론사는 연말마다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모금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자연재해나 불의의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하게 됐을 때도 캠페인을 합니다. 모금을 할 때는 일정 기간 동안 성금이나 물품을 보내온 분들의 명단을 지면에 싣고 방송을 통해 알립니다. 그 분들의 고마운 뜻을 알리고 다른 분들의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한 방법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나서는 것은 한겨레와 다른 언론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금에 참여한 분들의 이름을 싣는 데 있어서는 크게 차이가 납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은 성금을 낸 사람들을 다르게 대우합니다. 먼저 돈을 낸 사람의 신분에 따라 대접이 달라집니다. 대통령이나 정치인의 경우 금액이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사진을 싣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부 부처나 산하기관 그리고 기업 임직원들이 함께 돈을 모아 온 경우에도 일정 금액을 넘어서면 그 조직의 수장의 사진을 함께 실어줍니다. 많은 돈을 낸 사람들도 배려합니다. 여느 사람들의 경우 사진이 실리는 경우는 아주 많은 돈을 낸 경우가 아니면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이름과 금액만을 한 줄로 간단하게 싣습니다. 방송도 비슷합니다. 언론사들이 왜 그렇게 할까요. 이는 모금 행위 자체를 자사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데 활용하기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대통령이나 유명 정치인이 성금을 기탁할 정도로 신경을 쓰는 언론사, 한번 모금을 시작하면 대기업에서 수억 원씩 성금을 내 많은 성금을 모을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언론사임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닐까 합니다. 그런 편집은 유력인사들이 자사에 성금을 내도록 유인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심지어 기자들을 동원해 자사에 성금을 내도록 출입처에 ‘압력’을 넣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성금을 내는 쪽에서도 계산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치인이나 기업인 그리고 각급 단체의 장 가운데도 성금을 낼 때 이런저런 것을 고려해 자신에게 호의적인 언론사나 홍보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곳에다 성금을 내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하지만 한겨레는 다릅니다. 누가 냈건, 얼마만큼의 돈을 냈건 똑같은 크기도 다룹니다. 대통령이나 환경미화원이나 지면에서 차지하는 크기는 같습니다. 금액에 상관없이 이웃을 돕겠다는 마음은 같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연봉 1억원을 받는 사람이 낸 10만원보다 중소기업 노동자가 낸 1만원이 가치로 따지면 훨씬 큰 것이 아니겠습니까. 북한 동포 돕기나 베트남 돕기 등 한겨레만의 캠페인을 하면서 기사를 쓸 때도 사회적 지위의 높고 낮음이나 금액의 크기보다는 진심어린 마음을 담아온 분들을 주로 소개합니다. 그래서인지 한겨레의 모금 캠페인에는 큰 돈이 모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겨레에는 비록 금액은 적지만 이웃을 돕겠다는 마음하나로 기름때 묻은, 소금땀에 절은 돈을 보내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자신의 이름조차 드러내기를 수줍어하는 그런 분들 말입니다. 물론 정치인이나 기업인 그리고 전문직 종사자 가운데 한겨레에 성금을 보내봤자 크게 빛이 나지 않음에도 한겨레가 좋아 큰 돈을 선뜻 보내주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한겨레는 그 모든 분들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고 여깁니다.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정성은 사회적 지위나 신분의 높고 낮음, 금액의 크기와 상관없이 같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믿음을 지면에 오롯이 담아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겨레의 이런 철학은 우리 사회의 그늘에 따뜻한 손길을 끊이지 않고 내미는 독자들이 함께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권복기/편집국 문화생활부 bokkie@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