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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전 ‘케이블’ 로만 중계해 ‘시끌’…550만가구 ‘시청불가’
영국선 ‘A매치’ 독점방영 못해…‘보편적 접근권’ 다시 주목
윔블던 결승(테니스, 영국) F1 그랑프리(자동차 경주, 이탈리아) 멜버른컵(경마, 오스트레일리아) 투르 드 프랑스(사이클, 프랑스)…. 모두 ‘보편적 접근권’이 보장된 스포츠 경기들이다. 보편적 접근권이란 국민적 관심이 큰 경기는 누구나 무료 지상파방송에서 볼 수 있게 법으로 정한 권리이다. 2월22일 한국-시리아 국가대표팀 축구 경기가 지상파(KBS, MBC, SBS)는 배제된 채 케이블방송으로만 중계되자, 우리나라에서도 이 권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텔레비전을 보유한 전체 1700만 가구 가운데 케이블방송 가입자가 1400만 가구로 80%를 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가입하지 않은 가구 역시 300만에 이르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시리아전을 독점 중계한 엑스포츠의 경우 미가입 가구가 550만에 이르다 보니, “돈 없으면 축구도 못보나!”라는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나올 만했다. 보편적 접근권은 1996년 영국에서 처음 법으로 보장됐다. ‘언론 재벌’ 루퍼드 머독이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의 유럽 방송권을 독점한 게 계기가 됐다. 영국 국민들이 지상파로 올림픽을 시청하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지자, 의회는 방송법을 고쳐 ‘국민 통합에 기여하고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가 출장하는 국제적 수준의 스포츠 경기’들을 ‘특별 이벤트 목록’으로 정해 국민들의 ‘볼 권리’를 보장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덴마크, 오스트레일리아 등도 비슷한 법을 두고 있다. 나라마다 보편적 접근권의 구체적 기준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올림픽과 월드컵, 국가대표팀 축구경기 등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대상이 된다. 물론 보편적 접근권을 부정하는 나라들도 있다. 미국이 대표적인데, 미 대법원은 “보편적 접근권이 방송산업의 시장 경쟁을 막아 수정헌법 1조에 어긋난다”며, 무효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보편적 접근권의 개념은 방송의 ‘공공성’에서 출발한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민언련) 등 언론단체들은 “축구 A매치 경기를 지상파로 볼 수 없는 것은 수용자 주권을 명백히 침해하는 것”것이라고 주장한다. 방송법은 시청권을 보장하고 있는데, 시청권을 누릴 1차 수단이 지상파 방송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보편적 접근권을 보장하려는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손봉숙 민주당 의원은 “국민적 관심사가 되는 스포츠 경기는 지상파방송으로 중계하도록 해 시청자의 보편적 접근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 의원은 지난해 10월 이런 내용으로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이 개정안은 문화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해 현재 전체회의에 계류돼 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찮다. 꼭 지상파로 중계해야만 보편적 접근권이 보장되는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엑스포츠의 대주주인 IB스포츠 구동회 이사는 “케이블방송 가입자가 전체 시청자의 82%에 이르는 만큼 이제 케이블방송이 지상파를 대체할 수 있는 단계가 됐다”고 반박했다. 이와 함께 어느 스포츠 경기까지 보편적 접근권을 보장할 것이냐도 풀기 쉽지 않은 문제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매체 다양성 시대에 맞게 어느 한쪽에 독점적 권리를 주지 않으면서도 국민 일반의 보편적 접근권을 일정 부분 보장해줄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볼 것을 제안한다. 정용준 전북대 교수(방송정책)는 “우리나라는 뉴미디어가 발달해 있는데다 케이블방송 시청료도 외국보다 싸기 때문에 지상파 위주로만 잣대를 마련하기는 어렵다”며 “다만 일정 기준을 정해 이 기준을 충족하는 경기는 케이블방송이 중계권을 따내더라도 지상파에 반드시 재판매해 국민 일반이 시청할 수 있도록 보완장치를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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