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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한겨레가족모임 회원들이 서원대에서 열린 인권학교 강좌를 단체로 수강한 뒤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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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바람] 충북 청주 주주·독자 모임
‘한겨레 사랑’으로 맺은 인연
회원 모두 가족처럼 화기애애
충북 청주에는 <한겨레> 주주·독자 모임이 있습니다.
1992년 5월15일 한겨레 창간 네 돌 때 처음 태어났으니 이 모임도 이젠 열 네살 소년으로 자랐습니다.
전국 여러곳에 한겨레 주주·독자 모임이 있지만 청주 모임은 유독 ‘가족’의 정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이름도 ‘한겨레 가족 청주 모임’입니다.
때론 서러우리만치 눈물 쏙 빠지는 꾸지람과 매서우리만치 날카로운 비판도 서슴지않지만, 지쳐 힘겨울 땐 부드러운 손길과 따뜻한 가슴을 열어 체온을 나눠 가슴 언저리를 따뜻하게 데워주는 모임입니다.
팔순의 정운종 고문, 임명수 초대회장과 오상칠·조인호·정영권·김윤모 회장 등 역대 회장단 등 몇몇을 뺀 나머지 회원들은 모두 형·동생으로 불립니다. 회원을 넘어 가족이니까요.
가족이라 늘 화기애애 하냐구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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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모임의 술판은 특히 유명하지요. 모임 초기 “전국의 시민 모임들이 모여 술 내기를 하면 단연 한겨레 청주모임이 1등을 할 것이다”라는 말이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한겨레> 가족 청주모임 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노동자, 농민, 여성, 교사, 시민운동가, 정치인, 법무사, 학생, 소상공인, 주부, 운전사, 회사원…, ‘직업의 백화점’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경력을 지닌 다양한 이들이 벌이는 토론은 사회적 소수자들을 위한 ‘지역 운동판’의 밑거름이 되기도 했습니다. 발족 초기 청주 모임은 지역에서 어엿한 시민단체의 한 축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토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과 함께 하는 역사 기행, 언론개혁운동, 옥천 언론문화제 참여 등 활발한 활동이 뒷받침됐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처럼 다양한 경험을 쌓은 회원 중에는 시민·문화 운동가, 지방의원, 국회의원으로 성장해 봉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겨레>는 지난해 제2창간을 선언하고 대대적인 독자·주주 배가 운동을 했지만 청주 모임은 초기부터 꾸준히 이 운동을 해 오고 있습니다. 물론 무조건 사랑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보다 <한겨레>를 꼼꼼이 보는 회원들은 모임 때만 되면 “요즘 기사 왜 이래”, “<한겨레>도 맛이 가나”, “옛날이 <한겨레>다웠어”등의 비판을 걸러내지 않고 토해냅니다. 회원으로 참석하는 기자에게 쏘아 붙이다가 성이 차지 않으면 <한겨레>로 전화를 걸어 열변을 토하기도 합니다. 이 청주 모임에서 <한겨레>가 베낀 게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소식지’입니다. <한겨레>가 제2창간을 하면서 시작했던 소식지를 청주 모임은 1994년부터 다달이 만들고 있습니다. 종잇값만 매달 15만원이 들지만 늘 4800부를 만들어 청주 독자들과 공유하고 있습니다. 소식지를 만드는 데는 김인규씨 등 전직 <한겨레> 배달일꾼과 현직 지국장들이 큰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14년을 이어오면서 고민도 있습니다. 모임 초기 식당 하나를 가득 메웠던 회원들이 줄고 있다는 것이지요. 일, 시간, 생활 등을 이유로 몇몇 회원을 떠나보낸 것은 가슴 아팠습니다. 지난해 7월 회사의 도움없이 청주 모임만의 힘으로 ‘한겨레 한마당’ 행사를 성공적으로 열었을 때는 가장 가슴 벅찼던 순간입니다. 창간호부터 한부도 빼지 않고 모은 신문, 창간 초기 배달 일꾼들이 쓰던 깃발이며 가방과 옷, 손때 묻은 소식지 등 모두가 그대로였습니다. 그런 기쁜 순간에 이 빠진 듯 함께 하지 못한 지난 회원들의 추억은 그래서 더욱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청주모임의 가장 큰 바람은 무얼까요? ‘젋어지는 것’입니다. 모임의 막내가 서른 다섯살 노총각 총무입니다. ‘젊은 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겨레>가 제2창간을 선언했듯이 청주 모임도 ‘제2창립’을 목표로 내실 다지기에 나섰습니다. <한겨레>를 사랑하는 분들은 가족으로 오세요. 함께 고민을 나누고, 함께 정을 나눌 준비만 하시면 됩니다. 오윤주/지역팀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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