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7.05 18:57
수정 : 2006.07.05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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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에 지어진 고풍스런 신문사 사옥(왼쪽)과 편집국 내부(오른쪽). 몇차례 개보수를 한 때문인지 편집국은 마치 대기업의 사무실 같은 깔끔한 분위기를 풍겼다. 지난 4월 편집인으로 발탁된 마르쿠스 슈필만(가운데 사진)은 신문의 위기가 아니라 미래와 희망을 얘기하자며 자신감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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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짙은 ‘중도우파’ 좌파성향 독자들도 수준높은 정보 때문에 버리지 못해
40대 초반이 편집인 국제·경제뉴스에 비중 기자 60명중 40명이 특파원
김효순 편집인, 스위스 정론 ‘NZZ’(노이에 취르허 차이퉁)를 찾아가다
15만부의 유가부수로 최고 수준의 권위지로 인정받는 신문은? 그것도 세계 공용어로 군림한 영어가 아닌 언어로 작성되는 신문이라면?
답은 스위스의 노이에 취르허 차이퉁(NZZ)이다. 신문의 일면 제호 바로 밑에 227년도 판이라는 말이 있다. 유럽, 아니 전세계에서 계속 발행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신문의 하나라고 한다. 최근 경제 교육 중심도시인 취리히의 팔켄가에 있는 신문사를 찾았다. 19세기 말에 지었다는 사옥의 편집국에 들어서니 역대 편집인들의 초상화가 쭉 걸려 있다. 초대 편집인에는 1780년이란 숫자가 있으니 오랜 세월의 무게가 절로 느껴진다.
현 편집인 마르쿠스 슈필만은 지난 4월에 취임했는데 신문의 홈페이지에 실린 약력 소개에 1967년생으로 돼 있다. 자신의 사무실에서 따듯하게 맞아준 그에게 결례를 무릅쓰고 예상했던 것보다 젊다는 질문을 먼저 던졌다. 그는 스위스의 다국적기업에서 최상층부가 아닌 중요한 자리를 40대 초반에 맡기는 것은 그렇게 이례적 일이 아니며 자신의 전임자도 40대 초반에 맡았다고 설명했다. 나중에 2005년에 나온 NZZ 225년사를 보니 의문이 풀렸다. 1933년부터 현재까지 편집인이 슈필만을 포함해 모두 4명에 불과했다. 그의 전임자 후고 뷔틀러는 85년 41살에 취임해 21년을 재임하고 물러났다. 한국의 언론풍토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관행인 셈이다.
이 신문의 크기는 베를린판형이다. 한국 신문의 기본인 대판과 타블로이드의 중간형태다. 70년대 중반부터 이 판형을 썼을 것이라고 하니, 2년 전 영국 신문시장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던 판형 바꾸기 전쟁이 이 곳에서는 얘깃거리가 되지 않았다.
많은 신문들이 부수 감소에 대응하려고 판형이나 디자인 변경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NZZ의 해법은 여전히 깊이 있는 분석과 수준 높은 정보의 제공에 중점이 있었다. 겉모습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기사의 질이 최우선이라는 것이다. 독자의 평균상은 일반적으로 고등교육을 받고 소득도 일정 수준 이상이다. 사회적으로 위상이 확립된 층이고 정치적으로 관심이 많은 편이다. 콘텐츠의 질은 중도 우파로 분류되는 신문 논조에 불만이 있는 독자들도 인정할 정도로 정평이 있다. 슈필만의 설명에 따르면 좌파 성향의 독자들이 신문을 읽다가 화를 내곤 하지만, 수준 높은 정보를 다른 매체에서는 얻지 못하기 때문에 구독습관을 버리지 못한다고 한다. 그는 이것을 독자와의 ‘지적 비판적 대화’라고 표현했다.
눈에 확 뜨이는 특징의 하나는 기사에 기자의 이름이 없다. 10년 전에 비해 기준이 좀 완화돼 특별한 기사에는 예외적으로 이름이 붙기도 하지만, 대체로 머리글자(이니셜) 정도로 처리돼 있다. 슈필만은 중요한 것은 누가 썼느냐가 아니라 NZZ의 제호 아래 그것이 쓰여지고 발행됐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독자가 기자 개인이 아니라 NZZ이란 제호, 브랜드를 신뢰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설이 따로 없는 것도 독특하다. 그 대신 장문의 논평, 의견 기사들이 1면 등 주요 면에 실린다. 사설과 기사를 ‘교활하게’ 분리하지 않는 것이 오랜 방침이라고 한다.
신문은 여러 개의 묶음으로 돼 있지만, 대체로 단아하게 편집돼 섹션별로 확 구분되는 인상은 약하다. 1면을 제외한 첫 묶음은 거의 국제기사로 채워지고, 다음에 스위스 국내, 경제, 주식과 시장, 문화, 취리히지역, 스포츠, 기타 읽을거리 등의 묶음으로 이어진다. 기사의 배열에도 나타나듯 국제뉴스와 경제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신문이 자랑하는 국제취재망이다. 60명 가운데 40여명이 특파원이고 나머지는 통신원이다. 이들은 경제부나 국제부 소속으로 세계의 주요 도시나 수도에 배치돼 있다. 런던 같은 곳에는 경제와 정치 담당 외에 문화 담당을 하는 별도의 특파원이 있다. 아시아 지역은 델리 방콕 싱가포르 도쿄 베이징이 거점이다.
국제 정치와 경제 등에 대한 심층보도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은 스위스의 경제사정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인구 750만의 소국이지만, 대외순자산 규모로 따지면 일본에 이어 세계 2위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경제강국이다.
신문경쟁의 격화와 대안매체 들의 출현 속에서 NZZ은 부수가 약간 감소하고 있다. 1995년부터 국제판을 독일에서 현지 인쇄해 독일어권과 런던 등 유럽의 대도시에서 배포하고 있으나 영어 신문이 아니라는 한계를 넘기가 쉽지 않다. 역으로 독일신문들이 스위스 시장을 노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슈필만은 분명히 다른 미래가 있을 것이라며 낙관했다. 독자들은 바보가 아니며, 질 높은 정보에 대해서는 돈을 내겠다는 층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는 매체들의 통합 절차가 진행돼 신문시장이 자연스럽게 정리될 때가 올 것이라고 주장하고 고급콘텐츠만 있으면 정보의 유통 경로가 아무리 다양해지더라도 자신 있게 배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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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ZZ 어떤 신문? 1780년에 첫판 227년 역사…매달1회 ‘집중특집’ 유명
노이에 취르허 차이퉁의 효시는 1780년에 모습을 드러낸 취르허 차이퉁이다. 주 2회 체제로 발행되던 이 신문은 1821년 주 3회로 늘리면서 새롭다는 의미의 노이에를 앞에 부쳐 현재에 이른다. 유가부수는 2005년 기준으로 15만945부다. 스위스 국내판이 13만3천, 국제판이 1만8천 정도다.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가 1차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가을 이 신문에 ‘오 벗이여 그런 어투로 하지는 말아라’는 기고를 실어 독일 지식인의 민족주의적 경향을 경고했다가 배신자 논란에 휩싸인 일화가 유명하다.
신문의 부수 매체 가운데 인상적인 것이 NZZ폴리오다. 국배판 잡지 크기로 매달 1회 발행되며 하나의 주제를 선정해 집중조명하는 것으로 인기가 높다. 예를 들어 설탕이라는 주제가 정해지면, 건강 유해성 논란, 설탕을 둘러싼 로비전쟁, 감미료의 종류, 제3세계의 노예노동 등 다양한 측면을 다룬다. 1997년에 시작된 NZZ온라인은 다양한 콘텐츠를 올려놓고 일부는 유료판매를 하고 있다. 2002년 3월에 시작한 일요판 신문은 평일치보다 컬러사진을 많이 쓰고 자유분방하게 편집을 해 시장에 안착했다. 또한 국제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영상 다큐멘터리 등을 만들어 방송국을 통해 방영을 하는 사업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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