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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25 23:18 수정 : 2006.08.25 23:18

신문뭉치를 싣고 골목을 지나다가

열흘 전에 개업한 약국 앞에서

이 집은 무슨 신문을 볼까, 한 부 권하면 읽어보고

맘에 들면 며칠 후에 구독신청하지 않을까

내가 읍내서 18년째 신문배달 하는 사이

약국이 9개 새로 생겼고, 3개가 문닫고 이사를 떠났다

병원 근처에는 약국이 악어와 악어새처럼 먹고 살고

돈 벌려고 지금 읍내에 약국들은 14개

모두들 내가 배달하는 〈한겨레〉를 전화로 구독 신청한

집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로터리 근처 한 약국은

지난해는 구독료를 선불하여 더욱 고마운 애독자다

열흘 전에 생긴 약국에 한겨레를 한 부 넣어봐도

아무 반응이 없어 오늘 지나다 또 넣어 보았지

오전에 전화소리 울려 받았더니 본사의 여자 목소리

“OO약국에 신문구독 신청 안했는데 신문이 들어온다”고

그래도 새로 생긴 약국인데 두 번째 넣어 봤는데

구독은커녕 신문 넣지 말라고 본사로 전화하였다니

한 번 찾아가 인사드리고 의견 들어 보고 사정도 해보고

그래도 거절하면 돌아 나오면서 마음속으로 웃으며

“잘 먹고 잘 살아라 이 세상 떠날 때까지”

아니 다시 들어가 인사하고 웃으면서

“신문구독 안 해도 좋으니 시 한편 낭송해 주겠노라” 하면

그래도 거절할까, 그래도 거절하면 나는 두 눈을 감고

염불하듯 시를 한 수 차분하게 낭송하면

그래도 하지 말라고 밀어낼 건가, 들어 줄 것인가

읍내에 병원만 20여 곳, 내가 배달하는 신문은 한 곳도 안 봐주니

내가 먹고 살아가기 힘들지, 철천지 원수라도 된 것처럼

모두들 대학 나온 약사, 의사들인데

거절하는 이유가 뭘까, 의식구조가 문제일까,

창간 때부터 한 가지 신문만 배달해온 내가 문제일까

내가 배달하는 신문이 잘 못 만들어진 걸까

부자신문은 계속 봐주고 가난한신문 조금 보다가 끊고

외면하는 부자들의 천국인 양극화세상에서 하루를 살며

설득시킬 능력도 없어 다만 하소연하듯 이렇게 쓸 뿐.

이주형(59살). 그에겐 ‘한겨레’와 ‘시’가 있습니다. 그에게 ‘시’는 ‘삶’이며 ‘뜨거운 가슴’입니다.

창간 주주이자 충북 영동지역의 지국장으로 살아온 지 18년째. “왜 아직 〈한겨레〉의 봄은 오지 않는가?”라고 외치는 그에게 새벽은 남다른 의미입니다. 지난날 신문배달을 돕던 자식을 교통사고로 잃고 “나는 자식을 〈한겨레〉에 묻었다”고 절규하는 그는 〈한겨레〉의 씨앗을, 한겨레의 ‘바람’을 일으키려 18년째 새벽을 나섭니다.

농민운동가이며 농축산물 수입반대운동을 하다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하였고, 저서로는 ‘시골로 가는 길’ ‘빈 항아리의 울음’ ‘감나무 잎에 쓴 시’가 있습니다.

이동구 donggu@hani.co.kr/〈하니바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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