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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16 18:12 수정 : 2006.10.16 18:12

어린날 아버지의 영향으로 시사저널을 접해왔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사저널을 읽어왔다. 시사저널의 나이가 17세인 것을 생각해보면 시사저널의 성장과 나의 성장은 같은 시간 속에서 진행되어온 것 같다.

어린날 시사저널의 실린 '어른들'의 기사는 나에게는 그저 신가한 '어른들만의 놀이' 쯤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공부와 지식 습득의 장이 아닌 신기한 광경을 구경하는 심정으로 시사저널을 읽었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는 다른 성향의 잡지임에도 어린 자식이 '신통하게도' 시사잡지를 본다며 아버지께선 시사저널을 계속 구독하셨다. 결국 아버지의 시사저널에서 나의 시사저널로 바뀌었다.

나이가 들어가며 그저 구경터로써의 시사저널은 나의 사회적 정치적 시선을 결정하는데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동시에 시사저널의 페이지를 장식했던 화려한 필진은 나를 떨리게 하였다.

짧디짧은 글로써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크게 휘저을 수 있는지를 김훈은 한겨레의 '거리 칼럼'이 아닌 시사저널의 '편집장의 글'에서 보여주었다.

세상은 뚜꺼운 장이 아니라는 걸, 그런 세상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섬세하며 예민한 언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고종석에게서 배웠다.

날쌤과 발랄한 언어가 진중함과 신중함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님을 베를린에 있었던 진중권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안타깝고 안타까운 이성욱(故)과 소중하고 샘나는 이재현도 시사저널을 통해 알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머리가 어느정도 익어가며 여러 신문을 보고 여러 매체를 격으며 구독과 구독중단을 반복했지만 시사저널은 아직 나의 손에 들려있다.

한 때 한겨레21과 시사저널 사이에서 갈등했지만 뜨거운 발길의 한겨레21보단 차분한 손길의 시사저널을 내 손에 쥐었다. 그리고 시사저널의 손길이 뜨거운 발길만이 넘치는 한국 언론 시장에서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존재인지도 시나브로 알게 되었다.

어느 문필가의 말처럼 차분한 시사저널의 손길은 독자가 아닌 시사저널의 구성원들이 이루워왔던 것이다. 경영의 재정적 어려움에도 언론 환경의 급격한 변화 앞에서도 시사저널의 구성원들은 창간 때부터 지끔껏 보여주었던 차분하며 세밀한 기사들을 독자들에게 전해주었다.

잡지 첫 무렵에 적힌 기자와 구성원들의 소수의 이름이 믿기지않을 정도로 그들은 풍성하고 단단한 기사를 세상에 내놓았다.

시사저널의 편집권 침해 사태가 벌써 100여일이 지났다고 한다. 말 그대로 '국외자'이자 평범한 독자가 자신들의 권리와 언론 민주의 확립을 위해 애쓰는 시사저널 구성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그저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렇게 '격려'의 글을 몇 자 적는 능력 밖에 가진게 없다.

또렷하지 않지만 이번 시사저널 사태는 넘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자본이 언론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수 있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태라고 생각된다.

지난날 편집국장의 자리 물러나며 '자본권력'의 위험함을 얘기했던 한 언론인의 말이 생각난다.

'자본권력'과의 싸움, '편집권의 위치' 싸움을 떠나 차분하고 섬세한 시사저널의 기사를 편안히 보고싶다는 소박한 바람에서 말하면 금창태 사장이 시사저널 구성원들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편집권 침해에 대해 사과하길 바란다.

시사저널은 한국 사회에서 꼭 지켜져야하며 이 땅의 구성원들이 미쳐 챙기지 못한 섬세한 이야기들을 전해주는 역활을 이어나가야 한다. 정파성과 공정성에서 자유로웠던 시사저널의 위상과 힘이 흔들리는 지금의 모습은 평범한 스물 다섯 청년이 보기에 너무나도 안타깝다.

더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것이 그들의 기사로부터가 아닌 외부의 압력과 부적절한 처신들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더욱더 안타깝다.

언젠가 시사저널 기자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잡지에서 본 적이 있다. 당시 편집국장이였던 김훈씨는 카메라의 정면을 보지않고 다른 쪽을 보고 있었다.

모두들 정면을 쳐다보는 사진에서 김훈 국장의 모습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부디 힘겨운 시간들 일지라도 모두들 다른 시선을 던질지라도 꼭 시사저널의 정상화를 위해 시사저널 구성원들이 애쓰길 바란다. '시사저널을 위하여'할 수 있는 나의 최선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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