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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25 20:20 수정 : 2006.10.25 20:20

성한표

미디어 전망대

표적수사라는 말이 있다. 일반 수사는 범죄 혐의가 드러나면 그 범죄 혐의와 관련이 있는 사람을 수사하지만, 표적수사는 특정 사람을 찍어서 범죄 혐의가 있나 없나 수사하는 것이다. 요즘 북한 핵실험과 관련한 사설들 중에는 표적수사를 연상하게 만드는 경우가 흔히 있다. 이를 ‘표적 사설’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우리 사회는 지금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에는 대체로 동의하면서도(물론 여기에도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지만, 대세가 그렇다는 말이다.) 목표에 도달하는 수단에 대해서는 대화 우선과 제재 우선의 둘로 나누어져 있다. 그런데 신문 사설들이 표적으로 삼는 인물들은 주로 대화 우선을 주창하는 사람들이다.

가장 눈에 띄는 표적 사설은 24일치 〈조선일보〉 사설이다. ‘김 전 대통령은 쉬는 게 나라를 돕는 길이다’라는 사설이 그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하루가 멀게 국제 공조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고 그 목소리 쪽으로 일부 세력이 가담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말에 일리가 아주 없다는 말이 아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국가 원로인 전 대통령이 자신의 그 일리를 건지려고 대한민국을 국제적 고립의 길로 빗나가도록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라는 것이 이 사설의 결론이다.

김 전 대통령의 일관된 주장은 “미국이 북한과 대화에 나서라”는 것이다. 그런데 24일 〈프레시안〉을 보면, 미국의 국제정책태도 프로그램(PIPA)이 지난 6일부터 15일까지 벌인 여론조사 결과, 북한 핵문제를 다루는 방법에 관한 설문에 미국인의 55%가 “전제조건 없는 직접대화”에 찬성한 것으로 나왔다. 또 미국인의 78%가 “부시 행정부의 외교 정책이 국제적 친선을 저해하고 있다”에 동의했다. 부시 행정부가 ‘국제 공조’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제재 우선에 미국인의 과반수가 반대하고 있는 판에 김 전 대통령이 ‘다른 목소리’를 낸다고 하여 그것이 어떻게 대한민국을 ‘국제적 고립의 길로 빗나가도록’ 하는 일이 되는지 의문이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도 표적 사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김 의장이 개성에서 ‘실수’를 했다. 그가 사업 중단까지 거론되고 있는 개성공단을 방문한 것은 정적들과 제재 우선론자들의 표적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 행동이었다. 아무리 북한 음식점 종업원의 거듭된 권유에 못 이겼다고 해도, 그가 20~30초 동안 춤추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그는 스스로 신문에 가십거리를 제공한 셈이다.

그러나 일부 신문들은 이를 가십이 아니라 사설의 소재로 비중을 엄청 높였다. 심지어 그가 ‘섈위 댄스’(춤 재미에 빠진 중년 남성을 그린 일본 영화 제목을 딴 동아일보 사설)를 했고, “낮술을 곁들인 오찬에 취하고 무대에서 북측 여종업원들과 춤추고 노래했다”(문화일보 사설)는 식으로 과장된 표현까지 동원되었다.

북한 핵실험을 보도 논평하는 신문들의 논조가 대화 우선과 제재 우선으로 양분되어 있는 것은 자연스럽기도 하고, 잘 활용하면 좋은 사회적 토론 자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다른 의견’을 용납하면서, 이를 비판하는 자신의 주장을 정공법으로 펴는 당당한 자세가 필요하다. 다른 ‘주장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주장을 펴는 ‘사람 자체를 비난’하면서 대중적인 공격을 유도하는 태도야말로 표적 사설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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