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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1.08 22:58 수정 : 2006.11.08 22:58

김영호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김영호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한-미 자유무역협정 한국쪽 협상단의 농업관을 보면 절망적이다. 쌀만 빼면 농업은 경쟁력이 있다는 따위의 발언이나 늘어놓는다. 언론이 그들을 상대로 취재하다 보니 그 논리에 매몰되었는지 농업 피해의 심각성을 말하지 않는다. 지난달 23~27일 제주도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이 열렸다. 바로 그곳은 어쩌면 사망선고를 받을지 모를 감귤로 비탄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언론은 입을 다물었다.

제주도 전체 농가의 86%가 감귤을 재배한다. 감귤은 농업 조수입의 56.9%를 차지하니 뭍의 쌀과 견줄 만하다. 제주도 총생산액에서도 12.8%를 차지한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가 출범하면서 오렌지 관세율을 50%로 내렸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미국산 오렌지가 감귤나무를 뿌리째 뽑아내고 있다. 나머지 관세도 없어지면 제주도에서 감귤나무는 사라질 판이다.

미국의 감귤류 재배면적은 43만㏊로 제주도보다 20배나 넓다. 생산량은 1173만t으로 25배나 많다. 생산비는 15% 수준에 불과하다. 국내 도매시장에서 제주산 값의 63% 선에서 거래된다. 지난해 오렌지 수입량이 12만4000t인데 그 중 미국산이 11만6993t으로 전체의 95%를 차지했다.

쌀은 농가소득에서 절반쯤 차지한다. 주곡이기 때문에 많은 농가가 먹으려고 쌀농사에 매달린다. 쌀은 다자간 협정에 따라 이미 소비수요의 8%가 열렸다. 그 중에 상당량은 미국이 할당량이라고 해서 자국의 몫으로 가져갔다. 이것은 공정무역의 원칙에 어긋난다. 구매자는 가장 싼 값에 가장 좋은 품질을 고를 선택권이 있는데 미국이 그것을 뺏어 간 것이다.

미국이 쌀을 민감품목으로 인정해서 10년 이상 관세철폐를 유보해 준다고 치자. 다른 농작물을 포기해야 하는데 그때까지 쌀만 재배할 수 없는 일이다. 또 그때 가서는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식량 부족을 메우려고 밀의 관세율을 2%로 내렸다. 값싼 미국산에 밀려 이 땅에서 밀밭이 사라졌다. 자급률이 0.1% 될까 말까 한다. 미국의 압력대로 시장을 열면 쌀도 그 뒷길을 밟을 게 뻔하다.

이 나라의 식량자급률은 25.3%에 지나지 않아 나머지는 수입에 의존한다. 그나마도 쌀을 빼면 5% 안팎에 불과하다. 에너지의 97%도 국외에 의존하는 자원빈곤국이다. 지정학적으로는 미-중-일-러 4대 강대국에 둘러싸여 국가주권을 위협당하는 형국이다. 식량주권마저 외국에 내준다면 그 열강에게 자주권을 말할 수 있겠는가?

농업기반이 무너진 다음에는 누구도 우리에게 식량을 싸게 팔지 않는다. 공산주의의 붕괴는 만성적인 식량난이 가져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서유럽 국가들은 공업선진국이지만 식량자급률이 높다. 프랑스 222%, 영국 125%, 스웨덴 103%, 이탈리아 80% 등으로 말이다. 많은 전쟁을 겪으면서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터득한 까닭이다.

중국은 공업화-도시화-사막화로 식량자급이 무너졌다. 농업진흥책으로 올해부터 농지세를 폐지했다. 한국과 농업구조가 비슷한 일본도 2010년까지 식량자급률을 45%로 끌어올리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1995년 485만명이던 농민이 지난해는 343만명으로 줄었다. 쌀만 빼고 경쟁력이 있다면 왜 그들이 삶의 터전을 등지겠는가? 언론이 나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앗아갈 식량주권의 중요성을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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