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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1.27 13:22 수정 : 2006.11.27 13:22

‘문학동네’ 강태형 주주

[하니바람] 문예지 ‘문학동네’ 강태형 주주
다양한 정부부족 아쉬움…손님끄는 ‘헤드라인’을

파주에는 억새보다 키가 큰 갈밭이 있었어요. 그는 또래 남자들보다 성큼 컸습니다. 바람에 갈대가 조금씩 흔들렸지요. 여윈 그는 이미 바람에 다 흔들려버려, 바람을 품은 뼈를 가진 듯 했습니다. 뼈마다의 홈통에는 낮은 공명들이 슬픈 음악을 연주할 것 같은.

그와 마주한 창밖에 마른 풀들이 할 말 다한 임종을 맞고 있었어요. 할 말이 있어서 찾아간 그에게 이렇게 묻고 싶었지요. ‘얼마나 오래, 슬펐던가요?’ 실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시간을 얼마나 줄 수 있나요?” 시간이란 모든 생명에게 부여된 가장 중요한 자산이니. 인심이 후했어요.

그는 웃지 않았습니다. 그의 몸에 새겨진 낮은음표의 어느 소절쯤에서 웃음을 잃어버렸는지 궁금하지 않았어요. 설핏, 못생긴 남자의 우수가 우수답지요. 갈밭에 불을 지르는 노을이 아름답지 갈대 자체를 아름답다고 느낀 적이 없듯. 대신 귀를 기울였어요.

그는 오래 전, 시인(필명, 강태형. 50세)이었습니다. 뼈가 없는 동공의 어디쯤 공룡의 발자국처럼 시인이었던 흔적이 멈춘 시선으로 남아있겠지요. 6월 항쟁이 발뿌리에 멍을 박는 즈음 그는 마지막 시를 썼습니다. 여전히 너덜거리는 발톱으로 절며 걷던 88년에 ‘시인’을 구멍 난 고무신 벗듯 던져버렸습니다. 나라에선 면사포처럼 환상적인 흰 눈을 포실포실 덮었지만, 민초들은 질척거리는 진창을 밟아야했으니. 전천후인 군화는 폭우도 폭설에도 말짱했지요. 장마 진 역사는 삼십 여년 된 썩은 수렁에서 진실의 플랑크톤으로 연명했습니다.

한겨레 창간을 알긴 알았습니다. 그런데 돈이 없었어요. 대신 크고 알찬 마음을 보냈지요. 직업은 없었고 직책은 있었어요. ‘자유실천문인협회’ 편집간사. 이후 포도원출판사 편집장을 지내다, 93년 도서출판 ‘문학동네’로 명명하여 터를 다졌습니다. 94년 겨울에는 황종연, 서영채, 류보선 선생 등 탄탄한 지성의 편집진들과 문학전문잡지 계간 ‘문학동네’ 창간호를 냈습니다.

―시대의 모순을 증언하고 인간정신의 고귀함과 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일깨우는 문학의 역할은 여전히 계속되어야하며 계속될 수밖에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문학의 죽음을 전하는 풍문들이 여기저기서 공공연히 떠돌아다니며 기회주의와 허무주의를 확대재생산하는 요즘에도 문학만이 가질 수 있는 의미와 가치의 수호를 위해 싸우고 노력하는 문학인들이 우리 주위에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문학동네 창간호 중에서>

기성문인들 끼리끼리 판을 치던 기존의 문예지와 ‘문학동네’는 달랐습니다. 반짝이는 신인과 열정의 젊은 작가들을 자꾸 내보였지요. 예술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는 돈을 모으기보다 쓰는데 열심이었어요. 책을 팔아 책을 홍보하는데 더욱 더 적극적이었습니다. 잘, 찾아낸 작가들의 글은 신선하고 달았습니다. 언제부턴가 독자들은 ‘문학동네’의 책을 맘 놓고 덥석 사도 좋았습니다.

한겨레 창간주주는 아니었지만 그는 오랜 독자였습니다. 형편이 썩 나아지지 않았지만 직업이 있었기에, 한겨레 제2창간 주주로 참여했습니다. 마치 부자인 양 크게 한 턱 쏘았습니다. 그는 쪼잔한 글쟁이가 아니었습니다.

직업상 모든 신문의 문화면을 필히 읽는 그에게 한겨레의 좋은 점을 물었습니다. 다른 신문에서 느낄 수 없는 변별성이라 합니다. 가난한 경영여건 속에서 출발했지만 정당성에 관한 자신감이 넘쳤던 창간 정신을 추억했습니다. 덧붙여 건강한 진보를 위해, 꼭 존재해야할 신문이라고.

한겨레의 나쁜 점을 물었습니다.

답답하고 흥미롭지 못한 점. ‘헤드라인’부터 멋지게 유혹하지 못하는 안일함. 신문이 단순한 뉴스페이퍼로 하루살이처럼 사라지지만, 기사는 독자의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음을 간과하지 않기를. 다양하고 깊이 있는 정보가 부족해 보인다고 했습니다.

한겨레의 개선에 희망사항을 부탁했습니다.

여유와 자신감을 가지라고 합니다. 그는 보통 사람들보다 더 많은 글을 읽어왔을 것입니다. 어떤 사안에 관한 문장에서 무성의하게 풀어쓰고, 대충 또는 급히 마무리되었음을 모를 리 없지요.

맞는 말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진솔한 충언을 듣고자 우리 리포터는 <하니바람>을 몰고 주주·독자님들을 만나러 다니는 것입니다.

그와 헤어져 나오자 파주출판도시가 어스름에 잠겨 있었습니다. 사람보다 길고 긴 수명을 가진, 지식의 원천이며 문화의 원류가 책입니다. 군데군데 펼쳐진 들은 밤바다처럼 깜깜했어요. 책이 잘 안 팔리는 출판계의 현실이 마른 풀이 누운 들 같았지요. 마치 중앙아시아로 이주 당했던 옛 한인들의 피땀처럼, 몇몇 불 켜진 출판사들을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황량해보였던 것일까. 책을 많이많이 읽어야지. 카자흐스탄의 한인처럼 콧수염을 기른 북방계 그의 얼굴에 웃음이 스밀 때 까지 말입니다.

글. 이미진 lmijin0477@hanmail.net 최상환 sannarae@chol.com/<하니바람> 리포터

사진. 윤경진 photoro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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