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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1.27 13:29 수정 : 2006.11.27 13:29

1987년 10월10일 <새신문 소식> 1호

[하니바람] 성장센터

한겨레 가족지인 <하니바람>의 모체는 1987년 10월10일 ‘새 신문 창간 준비 사무국’이 발행한 <새신문소식> 1호였습니다.

이때의 소식지는 신문이라기 보다는 창간 발의자들에게 창간 진척사항을 알려주는 문서 정도였습니다. 소식지의 크기도 지금의 일반 문서용지 크기로 2~3페이지 분량이었습니다. 새신문소식 1호에는 새신문 창간을 지지하는 가계 원로들의 명단과 새신문 제호 모집 공고, 창간사무국 일꾼 인선 내역과 주식청약 안내가 실려있습니다.(원본 PDF는 e하니바람 참조)

같은 달 24일에 발행된 2호에서는 민주신문, 자주민보, 독립신문 등의 후보들을 제치고 <한겨레신문>으로 제호가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큰 뉴스로 다뤄졌습니다. 이때는 신문이 나오기 전이니 감격스런 소식이었지만 창간을 준비한 몇몇 사람들에게만 전해졌습니다.

한겨레가 창간된 해인 1988년 10월, 주주·독자와 한겨레 임직원간에 하나가 되어 ‘소통’해야 한다는 경영방침에 따라 <한겨레 가족>이 창간되었습니다. 한겨레가족은 그후 한겨레 가족의 희노애락을 충실히 전했습니다.

송건호 대표이사는 창간사에서 "주주들은 신문 제작을 비롯해 그 내용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즉 사원들이 주주들에게 신문제작과정 및 그밖의 여러가지 사내 사정에 대해서 보고를 하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56호까지 낸 이 소식지는 1996년 5월 56호를 끝으로 8년만에 발행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곤 5년이 지났습니다. 2001년 9월 한겨레 가족의 후신인 <열린사람들>이 창간되었습니다. 창간사에서 당시 최학래 대표이사는 "주주·독자들의 모든 지적과 요구에 대해 신속하고도 충분한 설명을 드리지 못한 점 늘 송구스럽게 생각해 왔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후 <열린사람들>은 회사가 경영위기에 봉착했던 2004년 10월 33호를 발행한 것을 끝으로 정간되었습니다. 3년만의 일이었습니다.

비상경영 상황에서 중대하고도 시급한 경영활동의 범주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제2창간소식지>의 형태로 다시 돌아온 것은 한겨레 제2창간운동이 시작된 지난해 6월이었습니다.

한겨레는 대내외에 다시 태어날 것을 선언하며 주주배가, 독자배가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6월부터 발행된 이 소식지는 격주로 발간되며 제2창간운동을 주주·독자에게 알리는 첨병이었습니다. 제2창간소식지는 올해 4월 20호를 끝으로 발행을 마감했습니다.

마지막 호는 한겨레가 주주·독자와의 소통을 제도화하고 전용 매거진은 물론 웹진도 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지난 5월 <하니바람>이 탄생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하니바람>의 역사는 한겨레 만큼이나 순탄치 못했습니다. 이름은 달랐지만 창간과 정간을 반복했습니다. 항상 열려있어야 했던 ‘소통의 장’이 닫혔던 것입니다. 그만큼 대화의 질도 안정적이 못했습니다.

주식차익이 아닌 삶의 목표와 가치를 나누고자 한겨레 창간에 참여한 7만 주주님들, 오로지 진실에 대한 믿음 하나로 오랜동안 갖은 유혹 을 물리치고 한겨레를 고수하는 35만 독자님들께 죄송한 마음입니다.

요즘 ‘처음처럼’이란 소주가 잘 팔린다고 합니다. 아마도 ‘초심’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이 술잔에 녹아있기 때문인가 봅니다.

<하니바람> 1,000호가 발행되는 날 다시 ‘초심’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동구 donggu@hani.co.kr/<하니바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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