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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익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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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건호상’ 받은 동아투위 정동익 위원장 인터뷰
“송건호 선생과의 인연부터 떠올렸습니다. 75년 3월 동아일보 기자 대량 해직에 항의해 편집국장을 사직한 뒤 울먹이며 만났던 일이며, 84년 민주언론운동협의회를 창설하며 의장을 번갈아 맡으며 군사정권과 맞섰던 기억 등이 스쳐갑니다.” 5회 송건호 언론상 수상자로 결정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이하 동아투위 혹은 동투)를 대표해 만난 정동익(63)위원장은 감회어린 회고담으로 운을 뗐다. “고인의 올곧은 삶과 하나로 맺어진 동아투위 31년사를 정리하고 다시 언론민주화에 힘을 내어 보라는 당부가 아니겠느냐”는 소감이었다. 심사위원회는 “언론 통제 아래서 자유언론 실천에 앞장섰고, 해직 뒤에도 사회 민주화에 기여하며 30여년간 자유언론 수호의 기치를 내리지 않았다”고 수상 사유를 밝혔다. 언론탄압 규명법안 국회서 잠자30년 복직요구 동아일보 미동도 없어
젊은 기자들마저 외면 서글퍼 하지만 동아투위 내부에서는 송 선생이 투위의 식구나 다름없어 상 받기에 적절치않다는 반론도 많았다고 한다. 이에 그는 “나이 먹어도 언론 운동에 매진하라는 채찍으로 여겨 상을 받기로 했다”고 전했다. 동아투위는 박정희 정권의 언론 폭압이 한창이던 1975년 3월18일 벌어진 비극적 사건의 결과물이다. 전날 새벽 정부 기관원의 기사 간섭과 광고 탄압에 맞서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 안에서 농성하던 기자, 옛 동아방송 프로듀서 등 130여명을 정권과 결탁한 사주쪽이 폭력배 등을 동원해 쫓아내고 대부분 해직시킨 것이다. 앞서 동아 기자들은 74년 10월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해 외부 간섭 배제와 기관원 출입·언론인 불법연행 거부 등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었다. 내쫓긴 이들은 거리에서 ‘동투’를 결성했다. 74년 자유언론실천선언 계승과 복직,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출범한 이 단체가 30년 이상 장수하리라 봤던 이들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동투는 지금도 위원들이 매달 한차례씩 만나면서 활동중이다. 정 위원장 말대로 “출범 당시 요구 중 하나도 이뤄진 게 없기 때문”이다. 정 위원장은 “요즘 정부나 언론이 과거사 이야기 많이 하지만, 왜 언론 과거사는 한결같이 외면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2년전 동투가 주축이 되어 낸 언론탄압과거사진상규명 특별법안은 국회의 외면으로 내년 보상부분을 대폭 뺀 재개정안을 준비할 참이다. 동투 결성 기념일마다 광화문 사옥앞에서 사태해결 촉구 농성을 벌였으나 동아일보쪽은 미동도 없다. 지난 6월 김학준 동아일보 사장과 해직 당시 주필이던 이동욱씨를 만나 30여년전 악연을 풀자고 촉구해봤지만, 동아일보사쪽은 “김병관 명예회장이 와병중이라 대화를 못한다”는 답변만 내놓았다고 한다. 더욱 안타까운 건 2년여전부터 동아일보 현직 기자들과도 대화가 끊어졌다는 사실이다. 공채 10기 출신인 정 위원장은 “지난 3월17일 동투 결성 31주년을 맞아 사옥 앞에서 농성할 당시 60넘은 선배들에게 인사한 기자는 1명 뿐이었다“며 “젊은 기자들도 사쪽 눈치를 보는 것 같아 서글퍼졌다”고 털어놓았다. “인터넷 등 신매체 위력 앞에서 어느때보다 신문들이 어렵지만, 데스크와도 맞설 수 있는 치열한 의식과 심층적 시각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한 그는 말미에 울울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내년 3월17일에도 모른 체 하는 후배들 보면서 광화문 농성을 해야할지…”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동아투위 사람들 비상 기구로 꾸렸던 동아투위는 80~90년대 한국 언론운동사의 든든한 태반이 되었다. 78년 보도안된 시국 비화들을 폭로한 민주인권일지 사건을 비롯해 84년 민언협 결성과 86년 5공 보도지침을 폭로한 <말>지 창간을 주도했다. 88년에는 국민주 신문 <한겨레> 창간의 중요한 한 축이었다. 90년대 이후에도 언론과거사규명특별법을 청원하는 등 동투 30년사는 민주 언론운동의 뿌리를 다진 세월이었다. 본래 목표인 복직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위원들은 상당수가 사회 각계로 진출했다. 동아투위 위원들은 113명(작고인사 포함)으로 해직 당시 일부 간부들과 동아일보 1~13기 공채기수들이 망라되어 있다. 민주언론운동 ‘든든한 태반’
정·관·언론·문화계 등 진출 정계에는 이부영, 임채정씨가 국회의원으로 진출했으며 공채 최고참 1기인 권양자씨는 김영삼 정권 때 정무장관을 지냈다. 80년대 출판업을 했던 정두익 현 위원장은 사월혁명회 등의 재야활동을 잇고있다. 언론계는 김명걸, 권근술, 최학래, 김두식씨가 한겨레신문사 사장을, 이종대씨는 국민일보 사장, 이종덕씨는 국제신문 사장을 역임했다. 막동이였던 13기 정연주씨는 현 한국방송 사장이다. 학계에는 김민남(동아대 명예교수), 김학천(건국대 교수)씨 등이 있다. 문화계는 문학과 지성사 대표를 지낸 김병익씨가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이며 김언호씨는 출판사 한길사의 대표다. 중견사진가 강운구씨도 동투 출신이다. 국민주 신문 창간을 예언했던 2대 동아투위 위원장 안종필과 심재택 전 미디어오늘 사장 등 12명은 고인이 됐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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