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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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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전망대
‘야당 유력후보 암살’ ‘김정일 개입’ ‘대통령 하야’ ‘북한과 일본의 충돌’. 여의도 정가를 넘어 일반인들의 송년모임 자리에서도 빠지지 않는다는 ‘대선괴담’이다. 여의도 정가에는 언저리에도 가보지 못했다. 올해 송년 모임에는 꽤 얼굴을 내민 편이다. 그러나 대선괴담을 접한 것은 지난 21일치 두 신문을 통해서다. <중앙일보>의 ‘대선괴담으로 흉흉한 세밑’과 <조선일보>의 ‘대선괴담.’ 각 신문사의 정치부문 차장과 정치부장이 작성한 두 칼럼은 공교롭게도 같은 날 게재되었다. 시중에 떠돌아다니는 얘기라고 운을 떼고 괴담의 실체를 구구절절 소개한 모양새가 닮은꼴이다. 차이라면 전자가 성숙한 국민의식을 강조한 데 비해 후자는 정부의 안정적 대선 관리를 주문한 것 정도다. ‘대선괴담’은 언론이 입에 담을만한 소재였을까? 올 한해 미디어계의 화두는 ‘자기표현’이었다. 싸이질, 블로그를 지나 사용자 제작 콘텐츠가 봇물을 이루고 자기 홍보와 시민의 합성어인 ‘퍼블리즌’이 등장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당신'(You)을 선정한 것도 소수의 언론인이 아닌 다수의 누리꾼들이 자기를 드러내고 유통시킴으로써 전 세계의 미디어 영역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상업적 동기에서 비롯되었건, 감각적 소구에 치중하건 일반인의 자기표현은 무죄다. 언론 자유의 궁극적 목표도 권력을 누리지 못하는 일반인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자기표현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 하지만 언론인은 얘기가 다르다. 이들은 전문가로서 사회적으로 공식화한 의사 표출 통로를 갖고 있다. 이들의 말 한마디에 따라 의제가 설정되고 여론의 향배가 좌우되며 국가 정책이 영향을 받기도 한다. 따라서 언론인은 자기 표현보다 절제된 사리 분별과 판단을 미덕으로 삼아야 할 직종의 사람이다. 거리낌 없는 자기표현이 대세라고 해서 전문직 언론인이 그 대열에 합류하는 것은 경거망동일 뿐이다. ‘대선괴담’ 칼럼은 세태에 휩쓸려 본분을 망각한 언론이 범한 무리수다. 그 내용 하나하나가 황당무계하기 그지없다. 시정잡배를 자처하지 않는 이상 언론인이 옮기고 다닐 ‘거리’가 아니다. 대선 1년을 앞두고 괴이한 여론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작정이 아니고서는 묵살해도 시원치 않을 ‘여고괴담‘ 류에 불과하다. 그런데 괴담에 무슨 함의라도 담긴 양 그럴싸하게 치장하는 속내는 무엇인가. 자신들 주변이 그럴지언정 시중에 횡행한다고 은근슬쩍 일반화하는 기법도 고약하다. 언론을 비평하면서 종종 두 가지 딜레마에 직면한다. 하나는 언론계의 퇴행을 비판하다 보면 무시해야 마땅할 내용을 거론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대선 괴담 기사화를 비판하기 위해 괴담 내용을 언급했으나 그것이 도리어 건전한 독자의 정신세계를 좀먹고, 나아가 사회적 확산에 일조하지 않을까 우려하게 된다. 다른 하나는 비평이라고 해서 꼭 잘못을 들추어내고 지적하는 게 타당할까 하는 의구심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데 부정보다 긍정을 통해 비평의 쓰임새가 커지지 않을까란 기대가 있다.그래서 올해의 마지막 ‘미디어전망대’는 밝고 따뜻한 소재로 채울 요량이었다. 그러나 실패했다. 호사를 부리기에 필자의 능력이 모자라거나 우리의 언론 현실이 척박한 탓일까. 평화로운 새해와 함께, 부디 전자의 경우이길 소망하며.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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