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1.03 17:42
수정 : 2007.01.0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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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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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전망대
대통령 선거가 있는 올해 신문들의 신년 사설이 대선에 관해 언급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대선이야말로 우리 앞에 놓인 가장 중요한 정치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선을 강조하는 것이 지나쳐 마치 나라의 운명이 오로지 누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느냐에 달린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아무래도 자연스럽지 못하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신년 사설이 특히 대선을 강조했다. ‘국가 지도자를 새로 뽑는 해’(조선), ‘국민이 중심을 잡아야 나라가 산다’(중앙), ‘깨어 있는 국민이라야 산다’(동아) 등 제목부터가 그렇다. 중앙은 “또다시 후회하지 않으려면 무책임한 포퓰리즘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고 했고, 동아는 “진짜 ‘국민’의 힘이 무엇인지 보여 줄 한해”라고 다짐했다.
조선은 지난 대선의 국민 선택이 잘못되었다면서 “지난 4년은 분노의 대통령과 대통령의 분노를 먹고 사는 어둠의 자식들이 나라의 판을 이렇게 짜 나라와 국민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은 “올 12월19일은 세계가 우러르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천년의 꿈을 펼칠 수 있느냐가 결판나는 운명적 하루”라고 목청을 높였다.
한마디로 국민이라고 말하지만 국민 각자의 생각과 선택은 참으로 다양하다. 따라서 어느 대선에서 대통령을 잘 뽑았다, 또는 잘못 뽑았다고 말하는 것은 ‘국민’이 아니라 그 국민의 일원인 개인 또는 생각과 이해관계가 같은 집단의 판단일 뿐이다. 그러면 신년 사설에서 ‘국민의 선택’을 강조해 마지않은 세 신문이 지칭하는 ‘국민’은 어떤 국민인가?
이들의 ‘국민’이 누구를 말하는가를 짐작하게 하는 자료가 있다. 지난 12월29일치 〈조선일보〉 사설이 그것이다. 이 사설은 “대통령이 국민 향해 ‘붙어 볼래’ 하는 나라”라는 제목으로 시작해 “그래도 국민이 아니면 누가 이 나라를 붙들고 지켜 나가겠는가”라는 말로 끝났다. 사설은 그 이틀 전 나왔던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한 것이다.
그런데 사설이 문제 삼은 노 대통령 발언 중에는 국민에게 “붙어 볼래” 하고 말한 대목이 없다. 그는 “나는 특권구조, 유착의 구조를 거부하고 그것을 해체해 나가자는 발전전략을 갖고 있기 때문에 특권을 갖고 있는 집단과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을 뿐이다. 사설은 ‘특권을 갖고 있는 집단’이라는 부분을 ‘국민’이라는 말로 교묘하게 바꿔치기 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지지율이 10%도 안 되는 것으로 보아 지금까지는 분명히 성공한 대통령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지금 위상이 2002년 대선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은 아니다. 선거에서 국민은 항상 최선의 선택을 한다는 것을 믿는 데서부터 민주주의는 출발한다. 국민의 선택에 대해 일부 큰 목소리들이 왈가왈부한다면 민주주의는 정착할 수 없다.
일부 신문의 신년 사설은 지난 대선의 국민 선택을 잘못된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독자들의 시선을 노 대통령의 대척점에 있는 후보들 쪽으로 돌리려 했다. 또한 국민이 대선에서 좋은 지도자를 뽑기만 하면 나라의 앞길이 훤히 열릴 것이란 환상을 갖게 만들었다. 환상으로는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 국민들이 지도자 대망론에 사로잡혀 하늘만 쳐다보고 귀중한 한 해를 보내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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