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1.03 17:44
수정 : 2007.01.03 17:44
방송4사 비용 보전 요구…법안 최종 확정 무산
“방송사 실무진 합의 사장단이 뒤집어” 일정 지연 가능성
지상파방송 디지털 전환 관련 법안 확정이 미뤄지면서 정부와 방송사, 시민단체가 합의한 디지털 전환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리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와 방송사업자, 학계,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디지털방송 활성화 추진위원회’(활성화위, 공동위원장 조창현 방송위원장·노준형 정통부 장관)는 세밑 28일 회의에서 ‘지상파 텔레비전방송의 디지털 전환과 디지털방송 활성화에 관한 특별법안’(디지털방송 법안)을 의결할 예정이었으나, 견해차를 좁히지 못해 결정을 보류했다.
활성화위는 정부 법안을 확정짓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로, 법안 내용은 활성화위 산하 실무위원회(실무위)에서 한국방송 등 지상파 4사의 본부장·팀장급 대표를 비롯해 가전업계, 소비자·시민단체 등 이해 당사자들이 6개월여 논의 끝에 합의해 이날 활성화위에 올려졌다. 법안의 뼈대는 △지상파티브이 사업자는 현행 아날로그 방송을 2012년 12월 말 이전에 종료하며 △저소득층에 디지털전환 변조기를 지원하고 △방송사의 전환비용 부담을 고려해 ‘적정한 수신료와 광고 수입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합리적 방안을 마련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법안 확정이 무산된 데는 지상파 4사 사장단이 디지털 전환에 따른 비용 1조3천억여원(4사 자체 추산액, 자체 조달액 제외)의 부담 과중을 이유로 수신료와 방송광고 제도 개선을 법안에 명시할 것을 요구한 때문으로 전해졌다. 이들 4사는 또 △지상파 현행 채널 수를 2배수 이상으로 쪼개 늘릴 수 있는 엠엠에스(멀티모드서비스) 도입도 명시해 줄 것을 요구하며 법안에 반대했다. 특히 한국방송과 교육방송은 수신료 인상을 법안에 좀더 명확히 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들의 요구는 엠엠에스 도입에 따른 채널 확대와 중간광고 등 도입을 통해 디지털전환 비용을 일정 부분 감당하고 장기적으로 광고 매출을 늘리려는 속내가 깔려 있다.
그러나 엠엠에스 도입 명기는 실무위 합의단계에서 케이블업계가 거세게 반대한데다, 시민단체 등도 엠엠에스 도입은 방송정책 문제인 만큼 방송위원회의 권한사항으로 디지털전환 법안에 들어갈 내용이 아니라며 반대했다. 방송광고 개선 및 수신료 인상과 관련해 실무위에서 정리된 의견도 이를 법안에 구체적으로 명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실무위원장이자 활성화위 위원인 강상현 교수(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는 3일 “방송사들의 전환비용 관련 주장은 이해는 하지만, 2001년 디지털 방송 전환이 시작되면서 다른 사업자 진입을 허용 안한 만큼 기존 지상파 사업자에 특혜를 준 측면이 있다”며 “이는 생각하지 않고 지금 와서 ‘비용 부담만 강제한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인 이남표 실무위원도 “전환비용 문제는 법안 확정 뒤에 논의할 수 있는데도, 지상파 본부장·팀장급 대표가 합의한 안을 사장단이 뒤집은 것은 자사 이기주의”라고 비판했다.
방송위와 정통부는 늦어도 이달 중순 실무위를 다시 열고 가능한 한 이달 중에 활성화위 회의를 연다는 방침이지만, 법안 확정 뒤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2월 국회에 제출하려던 일정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다시 열릴 실무위에서 재합의가 도출될지도 미지수다. 강상현 실무위원장은 “지상파 방송사 대표들이 10년 가까이 끌어온 디지털 방송 전환이라는 더 큰 흐름을 위해 실무위 합의내용을 존중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