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7.01.17 18:50 수정 : 2007.01.17 18:50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전규찬

미디어 전망대

방학인데도 칼럼 쓸 날짜를 잊어버릴 정도로 일이 많다. 오늘 아침 ‘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 시청각미디어공대위’ 기자회견이 있었다. 서울 신라호텔 건너편 골목길에서 전경들의 방패에 둘러싸여 진행된 현장 풍경이 참 상징적이다. ‘홍보’로 민의를 밀어내고, 선전으로 여론을 봉쇄한 채 진행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폭력적 일방주의를 정확히 방증한다. 모두가 묻는다. 방송 개방은 누구를 위한 서비스인가? 미국의 초국적 기업과 국내 거대재벌의 짬짜미(담합),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가? 자본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신자유주의 정권에 대한 경고가 잇따른다. 방송 공익성이나 문화 다양성의 가치를 내팽개치고, ‘산업’과 ‘시장’, ‘경쟁’ 논리를 내세우는 정부 부처에 대한 고발의 목소리를 높인다. 위기의 공공영역을 반드시 보존하겠다는 결의를 재차 다진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막바지 ‘고위 정치급 타결’만을 앞두고 있고, 방송통신위 법안은 시민사회에서 반대하는데도 강행되고 있으며,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이라는 게 어렵사리 가꾸어낸 공영방송을 ‘도로 국가기관’으로 만들려 한다. 경황 없는 대격변 속에서 방송위는 뭘 하는지, 유감 한 마디를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방송개방만 해도 그렇다. 일년 전부터 시민사회 각 단체들이 공개토론을 요구했을 때, 방송위의 답변은 늘 이랬다. ‘미국이 개방을 요구하지 않을 건데, 왜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려 하느냐?’ 이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구두선으로 이어진다. ‘개방을 요구하더라도, 우리가 반드시 막아낼 테니 믿어 달라.’ 그런데 이제는 이런 자신감조차 찾아볼 수 없다. ‘시청각·방송의 개방은 불가피하니, 내놓을 것은 빨리 내놓으라.’ 엄청난 부가가치가 예상되는 미디어 시장을 노린 미국의 예정된 압박과 이에 굴복한 일부 부처의 압력이 방송위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예고됐던 포괄적 개방의 요구, 예상했던 예외 없는 개방의 시나리오가 최종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불행히도 방송위원회는 너무 무력해 보인다. 물론 소수 실무진에 대한 신뢰를 거두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정치적 독립성, 절차적 민주성에 대한 깊은 회의와 함께 출발한 방송위원들, 새로 임명된 방송위원장이 언제 단호한 결심을 밝힌 적이 있는가? 개방 강요에 맞서는 의지를 가지기라도 했던가?

형식이 내용을 결정하는 법이다. 부실하게 구성된 방송위원들이 방송의 공익성에 실질적 책임을 지기는 어렵다. 정권 눈치를 보기에 바쁜 위원장이 자본의 유혹에 맞서 공공영역을 수호할 리 만무하다. 시민 의식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이들의 시선에 조직 이기주의 차원을 넘어선 사회공통의 이익이 눈에 들어올지 의심스럽다. 불안하고 무능한 레임덕 상태, 합리적 판단, 자율적 결정의 책무를 외면한 채, 권력에 의해 지휘·통제된다는 느낌을 감추기 어렵다. 물론 그 폐해는 시청자가 고스란히 덮어쓴다. 경인방송 문제가 단적인 예다. 회장의 ‘스파이’ 시비에 대한 수사결과 이후로 허가 추천을 미루겠단다. 답답하고 안타깝다. 새 지역방송의 실험을 허접한 이유로 방해하고, 천삼백만 지역민의 시청복지를 가로막는 처사가 방송위원들의 자발적 조처라고 믿는 이는 없다. 외부 경고를 무시하지 말고, 서둘러 성찰하길 바란다. 방송위는 정권 것이 아니고, 방송위원들 것도 아니다. 귀중한 공공기구임을 자각하고, 맡겨진 사회적 임무를 다함으로써 제대로 마감하라. 추상같은 평가가 기다린다. 유종의 미를 거두라.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전규찬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