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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1.28 18:30 수정 : 2007.01.29 10:18

일본 스승에게 전한 이진희 할머니

리포터 기고

“60년 전 어머니의 담임선생님을 만나게 도와주세요.” 일본에 사는 제가 박석순님의 메일을 받은 것은 지난 12월 초입니다. 다행히 선생님의 따님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선생님은 연로하신 터라 집 밖 거동이 불편하고 음식을 제대로 드실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멀리 한국에서 그것도 60년 만에 제자가 자기를 찾는다니 무척이나 기뻐하셨답니다.

여기서 그 옛날 담임선생님을 찾는 주인공 이진희(80) 할머니를 소개할까요? 충남 서산 대산읍 대산리 대산초등학교. 스미다 선생님은 할머니의 5학년과 6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이었고, 당시는 일제 강점기였던 1940년대였습니다. 모모하라 진키라는 일본 이름으로 초등학교에 다닌 할머니의 기억에 선생님은 몸집이 크고 우락부락하며 시커먼 젊은 남자 선생님이었습니다. “국사가 ‘일본사’였던 시절이니 뭘 알았겠는감? 일본 사람들이 나쁜 짓 많이 했다는 것도 몰랐어. 촌구석에서 뭐 일본 선상들이 나쁜 짓을 하겄는감. 스미다 선상님도 어찌나 사람이 정직하고 바르셨던지 일본이란 나라에 대해 싫은 감정 없었다니까. 선상님 부인도 동네 아지매들 모아서리 바느질이매 노래매 가르쳐 가며 같이 지냈고….” 일본에 대해 나쁜 감정이 없었다는 얘기가 어찌나 충격적이었는지 저는 잠시 말문을 잇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할머니의 인생에서는 그 시절이 추억과 그리움을 남길 만한 시간이었으니까요.

지난 9일 할머니 일행은 비행기로 일본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아버님이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셔서, 오늘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내일 병원에서 뵈어야 할 것 같습니다.”라는 따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하루를 더 기다리고 다음날 오후 병원을 찾았습니다. 병실 안, 휠체어에 앉아 계신 스미다 유키마사(94)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보여주셨던 사진 속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야위고 많이 늙으신 모습뿐이었습니다. 할머니는 한국에서 가져온 카네이션을 선생님의 웃옷 한켠에 정성껏 달아드렸습니다. 60년 만의 일입니다. 두 분은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손을 맞잡았습니다. 할머니는 감격의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선생님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긴 시간 동안 면회할 수는 없었습니다.

당신이 살아온 집에서 제자를 맞고 싶으셨다는 선생님. 그래서 할머니 일행은 그 선생님의 집을 가 보았습니다. 오래된 목조 가옥은 선생님의 흔적으로 가득했습니다. 한평생 교육자의 길만을 걸어온 그의 집 안은 교장, 그리고 교육감을 거쳐 88년 총리에게 받았다는 교육 훈장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장애가 무엇일까요? 스미다 선생님과 이진희 할머니가 다시 만나긴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번 짧은 만남은 두 분의 가슴속에 아름다운 기억으로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글·사진 심수정 yukimori@hanmail.net/<하니바람> 일본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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