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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1.28 18:34 수정 : 2007.01.29 01:38

정종연 주주

출판사 ‘북폴리오’ 정종연 주주

1980년 5월 광주 전남도청을 지키는 시민들과 함께 그가 있었습니다. “대학생 형들이 어린 학생들은 이제 집으로 가라는 말에 대열에서 빠져나와 비겁하게 고향으로 도망갔어요. 계엄군에 끝까지 항거하다 돌아가신 그분들을 생각하면 죄지은 맘에 면목이 서지 않아 망월동 국립묘지 한번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언젠가는 꼭 참배하고 참회의 눈물로 용서를 구할 날이 있겠지요.”

어려서부터 유난히 책을 좋아했던 그는 이제 책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있는 출판사 북폴리오의 정종연(45) 팀장입니다. 북폴리오는 <주석 달린 셜록홈즈>, <플라이 대디 플라이>, <여자의 심리학> 등을 출간한 명성있는 출판사(www.bookfolio.co.kr)입니다.

한겨레가 창간될 때 그는 초급장교였습니다. 군인 신분으로 용감하게 창간 발전기금 10만원을 ‘실명’으로 냈습니다. 그가 발전기금을 낸 것 때문에 보안부대에서 확인해오자 배짱 좋게도 “술 마시고 돈이 남아서 샀습니다.”라고 말했답니다.

“제대로 된 언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그런데 그에게도 한겨레를 외면한 때가 있었습니다. “몇 해 전 한겨레 기자가 취재 온 적이 있었는데 (취재원을 무시하는 듯 대하는) 기자의 태도를 보고 ‘다른 언론사 기자들과 다를 바 없다’고 실망하여 신문을 끊었었죠. 평소에 생각했던 한겨레 기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일이 한겨레와의 인연을 아예 끊어버리진 못했습니다. “많은 언론이 있지만 독자의 진실한 눈과 귀가 되어주고 올바른 비판과 정보를 주는 신문은 그래도 <한겨레>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한겨레와 다시 인연을 이은 이유랍니다. “한겨레가 제대로 된 언론이려면 다른 신문과 달라야 하는데 그것은 ‘창간 당시의 한겨레 정신’입니다. 다른 언론과 같다면 한겨레는 필요없잖아요. 경영을 잘 해서 주주들에게 배당까지 해주면 더욱 좋겠지요.”

80년 5월 전남도청에 섰던 고교생
군 장교 시절 용감하게 주식 구입

그는 “과거 우리나라에서 큰 작가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독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책을 만드는 사람과 글을 쓴 사람만 있습니다. 독자가 없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서점이 있던 자리엔 게임방, 노래방이 들어선 지 오래입니다. ”라며 최근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세태를 걱정합니다. 출판업계와 신문업계에 닥친 위기에 대해 그는 ‘독자의 입장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독자의 눈길을 오랫동안 잡고 있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종연 주주는 전남 함평에서 5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그곳에서 80년 오월 광주를 만났답니다. 학원을 마치고 집에 가던 중 “고등학생이랑게요”라고 말했는데도 계엄군인은 갖은 욕설과 곤봉으로 머리를 때렸습니다. 피가 주르룩 흘렀지요.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의 어린 나이였지만 집에 돌아온 그에게 떠오른 것은 ‘이것은 옳지 않다, 맞서 싸워야 한다’는 일종의 소명의식이었습니다. 그 길로 유서를 쓰고 집을 나섰습니다. 18살 순수청년의 유서를 원문 그대로 싣습니다.


〈일기〉

80. 5.16. 밤

시국에 대해 대한민국의 민주화 작업에 대해 철야 성토를 하고 있는 대학교 형님들의 데모에 나도 한번 30여분간 참가하여 목소리 더높여 정부에 민주화 운동을 호소했다.

내가 가장 외치던 구호는 “언론 자유 보장하라” “노동권 보장하라” 등이다. 그리고 “계엄령 해제하라” 등과 정의가를 부르면서 광주 동명로에서 도청앞 광장까지 행진하며 성토하는 형님들의 피끓는 젊음을 봤다.

민주화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자유 보장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더구나 계엄령하에 언론자유란 국민학교 1학년 학생이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과제로 내준 숙제를 해갖고 오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숙제를 해 가지고 와서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세밀히 검사를 받아 매우 우수 학점으로 맞는 격이다.

<유서>

학생은 정의를 위해서 싸운다. 정치적인 목적이 있다면 왜 새파란 젊은 학생들과 어린 중고학생들까지 합세하여 싸우겠는가?

민주화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비상계엄령하에 어찌 민주발전이 이룩되어 가겠는가?

민주 시민이여!

다같이 합세하여 이 시국의 난관을 극복하여 고귀한 자유란 것, 그것을 건져내어 통일을 향한 힘찬 발걸음을 달려 나갑시다.

고향에 계신 엄마, 아빠

저는 혹시…

부디… 안녕히…

소자는 민주투쟁을 명심하렵니다. 하지만 저는 국가에 충성하는 마음은 추호도 변함없이 지키렵니다.

이런 시국에 북괴 공산군이 남침을 감행해 온다면 저는 펜을 버리고 나라를 지킬 겁니다.

1980년 5월20일 밤

정종연 주주

그때 쓴 유서와 당시 상황을 기록한 일기 원본은 지난해 2월 5·18기념재단에 기증했답니다.

문학책 읽기를 좋아한 청년. 대학 시절엔 용봉문학회 동아리 활동. 광복 후 우리 글로 된 교과서를 처음 만든 대한교과서에서 단행본 출판을 담당하는 사업팀장. 막내 딸 윤지(7)의 영특함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1남2녀를 둔 가장. ‘일터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는 것이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지키는 것’이라며 말을 맺는 정종연 주주. 어린시절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은 그도 지금은 평범한 가장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한겨레는 여전히 삶의 길잡이라고 합니다.

글 김운기 yykugg@hanmail.net/<하니바람> 리포터, 사진 김윤섭 outskirts@naver.com/<하니바람>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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