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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1.30 19:47 수정 : 2007.01.30 19:47

김영욱 한국언론재단 수석연구위원

한겨레신문 기자들이 29일 ‘취재보도 준칙’을 만들고 선포식을 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흔히 윤리는 지식이 아니라 실행의 문제라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무엇이 옳은가를 아는 것은 쉽지만, 실천에 옮기기 힘들다’는 의미라면 동의할 수 없다. 원칙적이고 추상적인 차원에서 무엇이 옳은가에 대해서는 쉽게 합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추상성을 낮추어 구체화시키려고 하면 미묘한 차이가 확인되고, 이를 좁히는 것이 매우 어렵다. 각각 옳은 가치들 중에서 어떤 것을 더 우선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한겨레가 만든 준칙은 그런 고민의 결과로 보인다.

신문을 발행하고 기자직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이 사회에 관한 특정한 지향과 편향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어리석거나 혹은 사악하다. 문제는 정치적 지향성과 세계관이 보도하는 사안에 대한 판단을 흐린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지향을 가진 정치세력과 사회집단에 대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반대 지향을 가진 세력과 집단에 대해서도 공정해야 한다. 한국 언론은 그렇지 못했고, 그래서 신뢰를 잃었다. 한겨레도 예외가 아니다.

준칙 제정은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신뢰를 복원하기 위한 한겨레신문 구성원의 결심일 것이다. 예를 들면 제8조 “사회적 약자를 취재할 때에는 그 처지를 최대한 살핀다. 그러나 이들을 배려하고자 사실을 축소·과장·은폐·왜곡하지 않으며, 보도는 공정해야 한다”가 그런 성찰의 표현이다. 또한 제4조는 편견과 선입견 배제를 규정했다. 사실 이것은 한겨레신문이 1988년 창간사에서 표명한 첫째 원칙, “결코 어느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을 것”을 재확인한 것이다.

아주 새로운 것이 아니라 단지 저널리즘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겠다는 것이어서 대수롭지 않은 일일까? 그렇지 않다. 취재원과 출처의 명시, 익명 취재원 사용 제한, 사실과 의견의 구분 및 그에 상응하는 언어적 표현 등 한국 언론이 취약하다고 비판받는 요소들에 대한 준칙의 규정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 언론의 관행이나 취재 환경에 비추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제정된 준칙이 외국의 모범적인 언론사 윤리 규정에 비해 포괄성과 구체성에서 아직 부족하다고 지적할 수 있다. 맞는 지적이다. 그렇다고 모범적 규정을 한국 실정에 맞게 적절하게 가공한다고 좋은 준칙이 되는 것은 아니다. 준칙은 현장에서 경험적으로 제기되는 구체적 문제에 대해 구성원이 논의와 합의를 통해 보완 및 확대해야 한다. 그래서 이번에 제정된 준칙은 마지막 장에서 “이 준칙을 새롭게 확장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한겨레신문 구성원의 의무라고 규정하고 있다.

준칙 제정이 바로 신뢰 회복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지면이 갑자기 변하지도 않을 것이다. 변화를 독자들이 인식하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 신뢰는 이렇듯 조금씩 쌓아갈 수밖에 없는 성질의 것이다. 구성원 전체가 진지하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준칙을 존중할 때, 그리고 독자들이 그에 상응하는 평가와 비판을 해 줄 때, 한겨레신문이 한국 언론에 대한 “불신의 벽”을 허무는 선도적인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김영욱 한국언론재단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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