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2.07 20:24
수정 : 2007.02.0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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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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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전망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기밀문건’이 유출됐다고 난리였다. 언론이 정부의 장단에 맞춰 쌍나팔을 불며 말이다. 노무현 정부는 미국에 타결조건으로 반덤핑과 상계 관세의 남발 방지를 내세웠다. 미국은 일관되게 거부해 왔다. 그러자 이 요구를 다른 분야에서 양보를 받아내는 지렛대로 활용한다는 협상전략을 세운 모양이다. 그 문건을 〈한겨레〉와 〈프레시안〉이 국익을 저버리고 보도했다며 소동을 피운 것이다.
정부는 유출자를 색출해서 책임을 묻겠단다. 그것도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언론은 정론일 수 없다고 일갈하면서…. 목적이라니 국민에게 협상 내용을 알리는데 불순한 동기라도 있단 말인가? (다른) 언론(들의) 보도는 한 수 더 뜬다. 기사, 사설, 칼럼을 통해 국운이 달렸다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어떤 사설은 ‘간첩죄’, ‘반역죄’를 들먹이며 ‘범인’을 단죄하란다. 하지만 무엇이 국익을 해친다는 내용은 없다.
상계 관세나 반덤핑을 제소당하면 추가 관세를 예측할 수 없다. 이 불가측성으로 인해 상계 관세는 수입 제한, 반덤핑은 수입 금지의 효과를 갖는다. 그 까닭에 이해 당사자들이 무역구제를 남발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 무역대표부의 처지에서는 무역 구제를 협상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 의회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협상을 진행하고 법 개정은 의회 소관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 점을 누누이 강조해 왔다. 수출국 중에서 유독 한국만 법 적용을 예외로 할 수도, 그렇게 법 개정을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또 산업계와 노동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의회는 전통적으로 수입 규제 완화에 부정적이다. 법 운영에서도 행정부가 재량권을 발휘할 여지가 없다. 제소권은 생산업자, 관련 협회, 노동조합이 가졌는데 어떻게 정부가 나서 제소를 만류하나? 피해 여부는 국제무역위원회에서 판정한다. 이 위원회는 대통령 직속이나 5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합의제의 준사법기관이다. 외부에서 판정에 어떤 간섭도 영향도 미칠 수 없다.
반덤핑의 투매율, 상계 관세의 부과율은 상무부가 결정한다. 예비 판정은 피소자가 제출한 답변서를 근거로 하고 최종 판정을 현지 실사를 거쳐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공청회를 열고 제소자와 피소자의 의견을 청취한다. 최종 판정까지는 280일이 걸리고 피소자의 요청에 따라 60일 연장이 가능하다. 미 무역대표부의 소관 밖이다.
미국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단언해 왔다. 그런데 협상 전략이라니 이것은 국민에 대한 기만 행위다. 일방적 양보를 변명하려는 술수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자유무역협정은 이념이 아닌 그야말로 국익의 문제다. 그런데 협정 반대는 반미라고 재단한 언론매체일수록 이번 사태에서 마녀사냥의 진면목을 보였다. 지난 1년 동안 이 협정이 한국 사회·경제에 몰고 올 파괴력을 전혀 말하지 않다가 말이다.
방송위원회는 또 뭔가? 실무회의 내용이 유출됐다고 법석을 떨었다. 기밀문건이라면 분류 표시와 함께 배포부수를 명기해야 한다. 달랑 종이 한 장인데 무슨 기밀인가? 방송위는 몰랐는지 몰라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내용이다. 같은 위원끼리 유출자 색출을 지시하다니 합의제란 뜻도 모르는 모양이다. 그러니 방송의 공공성-공익성을 팔아먹는 시장 개방의 의미를 알 턱이 없다. 여기에도 언론이 끼어들어 굿판을 벌였다. 정부나 언론의 논의구조가 너무 천박하고 유치하다.
김영호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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