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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고 교사 박규병 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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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창립 앞장 해직 경험
한겨레 사랑모임 매달 출석
“사랑한다면 더 다가서세요”
중화고 교사 박규병 주주
“요즘에는 학부모와 선생님 간의 건전한 상담까지 오해를 받는 시대가 되어 안타깝습니다. 담임선생님은 학생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습니다. 학부모가 아이에 대해 선생님과 상담을 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 교육에서는 꼭 필요합니다. 상담을 할 때는 선생님에게 부담을 주거나 편애를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그게 교육을 망치는 것이지요.”
교문 앞에서 반가운 표정으로 손을 내미는 그는, 매일 아침에 만나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평범하고 온화한 인상이었습니다. 비슷한 나이대의 교사라는 동료의식으로 초면임에도 쉽게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자리를 옮겨서도 저녁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서울 중화고등학교 지리담당 교사 박규병(52) 주주. 그가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한 뒤 서교협, 전교협, 전교조를 만드는 일에 동참했고, 한겨레에 대한 남다른 사랑과 교직에 대한 뚜렷한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내가 알고 있는 정보의 전부였습니다.
그는 1985년 선린중 근무 당시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 서울지역 교사 모임에 참여했는데 훗날 이 모임은 서울교사협의회(서교협)로 발전하게 되었고 전교협으로, 전교조로 커져 갑니다. 그러다가 1989년 영등포여고에 재직할 당시 전교조를 결성하면서 해직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2개월 만에 복직하기까지 짧은 기간 동안 겪었던 일을 떠올리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제가 전교조 문제로 해직을 당하자 아버지께서 그만 병이 나서 자리에 눕고 말았지요. 아버지께서는 교육 당국의 설득에 갈등이 심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탈퇴 각서를 쓰고 복직을 한 거지요.”
살면서 아픔만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가 교육 문제에 몰두하던 시절 아내를 만나는 행운도 얻었습니다. 교육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교사들의 모임에 참여하면서 전 와이더블유시에이(YWCA) 여교사협의회장이던 아내 김영애(51)씨를 만난 것입니다. 그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지금도 유일하게 동료교사로서 흔들림 없이 힘이 되어 주고 있는 아내와의 만남을 인생의 가치요,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아내와의 만남과 결혼이 아픈 시대를 살아가면서 힘든 현실도 꿋꿋이 견뎌낼 수 있게 하는 원동력과 버팀목이기 때문입니다.
학부모와 학생이 학교와 교사들을 신뢰할 때 교육이 바로 선다고 강조하는 그는 공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정부의 예산 지원이 더 필요하다는 말을 빼놓지 않습니다. 학생들의 다양한 능력과 창의력을 신장시킬 수 있는 계발활동 등 특별활동 프로그램에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해야 하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대학 입시 지도를 했던 경험을 살려 수험생이 있는 독자들에게 성적 향상을 위한 좋은 비법(?) 하나 소개해 달라고 하니 “아침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게 하세요. 분식이나 가공식품보다는 우리 쌀로 지은 아침밥을 먹는 것이 집중력과 지구력을 기르는 데 좋습니다. 그리고 입시생이다 보니 예습보다는 복습 위주의 공부가 효율적입니다. 마지막으로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는 의지를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기본적인 것을 실천하는 학생은 입시 성적도 항상 좋더군요.”
국경일 및 민주화 운동 관련 기념일 등 계기 교육을 해야 할 내용들이 탁상 달력에 빼곡히 적혀 있었고 또한 그 내용을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교사로서 그 기념일을 중심으로 살아있는 교육을 하는 것이 필요해 교육자료로 삼고 있답니다. 그의 역사관은 몇 마디 말 속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과거는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과거는 역사에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과거는 이미 있었던 일이었으니까요.” 그가 늘 빠지지 않고 매달 나가는 ‘서울지역 한겨레신문 사랑 모임’으로 화제를 돌렸습니다. 그 모임에 가면 한겨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쓴소리와 격려를 자연스럽게 듣게 되고, 술 한잔을 서로 권하며 <한겨레>를 위한 덕담을 주고받느라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한겨레>에 대한 사랑으로 멀리서 가슴앓이하며 지켜보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며 많은 주주·독자들이 이 모임에 나와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매월 둘째 주 금요일 저녁에 모이는데 보통 30~40명의 회원이 모입니다. 지난 모임에서 그가 작년에 강원도 횡성에 마련한 작은 펜션을 소개하며 한겨레신문 사랑모임 회원들을 올봄에 초청할 계획이랍니다. 한겨레 사옥 2층 로비 세 벽면을 가득 메운 주주의 이름 속에서 본인의 이름을 확인할 때마다 한겨레에 대한 첫사랑의 열정을 되새기게 된다는 그는 4년 동안 이 모임에 빠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후회하는 삶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그때그때마다 그것이 최고의 선이었기에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옳았는지는 내 스스로 판단할 수는 없죠.”라고 답합니다. “저는 우리 학생들과 <한겨레>, 이 두 곳에 희망을 겁니다.” 그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이 말이 계속 귓전을 맴돌았습니다. 글 이옥근 lok0327@hanmail.net, 사진 윤경진 photorov@naver.com/<하니바람>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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