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3.21 21:25
수정 : 2007.03.21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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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규찬/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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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전망대
왜 하필 제목이 이런지 궁금한가? 바디유라는 철학자에게 물어보라. 그러면 그는 이렇게 간단히 답할 것이다. 깊이 근본으로 파고들어 진실을 긁어 올리는 행위가 선이다. 반대로 표피에서 얼쩡거리며 단편적 정보의 막을 두껍게 만들고, 그럼으로써 진실 대면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행동이 악이다. 이 잣대에서 보자면, 한국의 티브이 뉴스는 결코 선하지 않다. 나쁘다. 자본을 징계코자 했던, 내부 부조리를 고발했던 <문화방송>의 이상호 기자가 의정부 지국으로 좌천되고, 초국적 축산기업의 참상과 멕시코의 비극적 실상을 증언코자 했던 <한국방송>의 이강택 프로듀서가 갑자기 다른 팀으로 가게 된 것이 더욱 그렇다. 티브이 뉴스의 방에는 지금 악한 안개가 잔뜩 끼어 있다. 소수의 선한 기자들이 걷어내기에는 한마디로 역부족인, 세계의 조망이 불가능할 정도의 짙은 불투명 상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보도는 말 그대로 최악이다. 선전이라고 명명해야 할지 홍보라고 고발해야 할지 모르겠다. 의도적인 것인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것도 불분명하다. 문화방송 <뉴스데스크>의 경우, 유감스럽지만 조중동과 하등 차이가 없다. 8차 협상이 진행중이던 11일치의 ‘쇠고기 전면 개방 초읽기?’가 압권이다. 광우병 우려가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불가피하다는 미국과 한국 정부의 논리를 교묘히 간접 선전하고 우회 홍보하고 있다. “미국의 쇠고기 개방 압력에 힘을 실어주는 국제 기구의 평가가 나왔습니다”라는 앵커에게 묻는다. “국제수역사무국이 미국을 ‘광우병 위험을 통제하고 있는 국가’로 예비 승인했다고 미국 농무부가 밝혔습니다”라는 기자에게 물어본다. 대체 누구의 목소리를 누구를 위해 멋대로 읊조리고 있나? 그대들은 진실과 만나보았나? 알고도 그러나, 아니면 정말 몰라서 그렇게 하나?
스스로 진실을 찾아나서는 성실함 대신에 권력의 입장만 전달하는 안일함을 택한 후진 뉴스는 같은날 한국방송의 <9시 뉴스>에서도 예외 없이 발견된다. “국민 10명 가운데 6명이 찬성하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라는 뜬금없는 뉴스가 뜬다. 반대하는 사람들도 찬성 쪽으로 입장을 바꿀 수 있다고 암시한다. 여론 조작이다. 여론 조사를 한 ‘민간대책위원회’가 협정 체결을 지지하기 위해 급조된 재벌 중심의 단체라는 사실은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데스크에 묻는다. 무역협회의 보도 자료를 그냥 되풀이한 것인가, 아니면 2월 말 실시되었다는 설문의 내용을 기자로 하여금 꼼꼼히 살펴보도록 한 결과인가? 기독교방송이 3월13일 전문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보니 찬반양론이 38 대 35%로 팽팽하게 나타났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왜 스스로는 조사하지 않나?
문화방송 라디오의 <손에 잡힌 경제>가 14일 내놓은 자료를 보면, 전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은 협정 체결이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이렇게 모두가 근심하고, 그래서 좀더 제대로 진상을 알고 싶어 한다. 그런데 막상 기자와 프로듀서들은 전혀 불안해하지 않고, 그래서 진실의 서비스를 게을리한다. 공영방송이 그렇다. 정말 이리 막가도 되나? 진실을 이렇게 푸대접하다가는, 자유언론, 언론자유의 책무를 이토록 처참히 방기하다가는 스스로의 자격이 박탈될 것임을 기자와 피디들은 알고 있나? 방송사들의 눈앞을 가로막은 뿌연 막을 서둘러 걷어내야 한다. 선량한 시민의 공익을 위한 최소한의 저널리즘 서비스를 고집스레 요구해야 한다. 지금처럼 뭉갠다면, 나쁜 뉴스, 악한 선전은 역사와 정의의 힘에 의해 반드시 퇴출될 것이다. 해일처럼 다가올 무자비한 초국적 자본의 일방 공세에 앞서.
전규찬/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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