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3.25 17:25
수정 : 2007.03.25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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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다 선생님과 이진희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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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선생님-한국인 제자
60년만의 재회 그 뒷이야기
리포터 기고
정말 안타깝습니다. 이 뒷이야기는 슬픈 소식으로 시작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지난 1월29일 <하니바람> 9호(1월29일치 30면 게재)에 ‘일본 스승에게 전한 1월의 카네이션’ 이야기를 소개해 드렸습니다만, 그 스미다 선생님이 1월31일 세상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할머니와 만난 지 20일 후의 일입니다. 신기하게도 할머니와 만나신 후 건강이 많이 안 좋아져 음식도 제대로 못 드셨다고 합니다. 정말 스미다 선생님은 ‘조선’에서 온 제자를 기다리셨나 봅니다.
일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불교식으로 장례를 치르고 보통 49재를 지냅니다. 3월20일이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49일째가 되는 날로, 이틀 앞당겨 18일 선생님을 모신 교토의 한 절에서 친척들이 모두 모였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옛 제자가 찾아왔다는 미담(美談)은 그 사이 굉장한 화제가 되었고, 참 좋은 일도 다 있다며 다들 기뻐하셨다고 합니다. 지금은 스님이 된 선생님의 옛 동료의 아들이 선생님께 지어 드린 법명은 ‘자교원정각행도거사(慈敎員正覺幸道居士)’로, 선생님의 이름인 ‘유키마사(幸正)’가 들어 있습니다.
평생을 교육에 투신하신 스미다 선생님은 분명히 좋은 곳으로 가셨겠지만, 좁고 검소한 일본 목조집에서 함께 살아온 선생님의 따님은 이젠 혼자가 돼서인지 알게 모르게 쓸쓸함이 전해져 왔습니다. 올해로 예순네살인 따님은 당시 선생님이 한국에 계실 때 태어나 자신을 ‘조선태생(朝鮮生まれ)’이라고 합니다.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겠지만 태어날 때부터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았고, 나머지 한쪽 눈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자택에는 벽에 지지대가 달려 있고, 긴 전등 줄 끝에는 추를 매달아 손으로 더듬으며 생활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따님에게 눈 대신 뛰어난 음악적 재능과 귀를 주셔서 음대를 졸업한 뒤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제자인 이진희 할머니께 전했고, 할머니께서 어떤 반응을 보이셨는지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을 만나고 돌아오던 전차 안에서 할머니께서는 “아휴, 이제 얼마 안 남으신 것 같아” 하시며 안타까워하셨는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심정이실까요. 선생님이 세상을 떠난 것은 분명 슬프고 가슴 아픈 소식이지만, 그전에 스승과 제자의 60년 만의 재회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싶은 것은 저 혼자만의 생각일까요? 짧은 만남이었지만 선생님은 ‘교육자의 길’ 끝에 아름다운 한 송이 꽃을 피웠습니다. 조용한 병실 안에서 두 분이 맞잡은 손과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 사이에 분명히 있었던 그 어떤 기운이 지금도 생생하게 전해옵니다. 따뜻하고 영원할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스미다 유키마사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글·사진 심수정
yukimori@hanmail.net/<하니바람> 일본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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