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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3.25 17:38 수정 : 2007.03.25 17:38

김왕복 부장

‘한겨레’ 제작국 윤전2부 김왕복 부장


아내 권유로 부부 함께 공부
방통대 행정학과 6년만에 졸업
“배운 것 회사에 접목하고파”

순한 인상에 선한 눈빛, 여기 한 남자가 있습니다. 나이가 44살인데 이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도대체 이 늦깎이 졸업생이 누구냐고요? <한겨레> 제작국 윤전2부 김왕복 부장(의왕시 삼동)입니다.

신문사 하면 기자들만 떠올리시나요? 지금까지 <하니바람>을 열심히 읽은 독자라면, 편집국 말고도 중요한 부서들이 많다는 정도는 알아주는 센스~ 있으시겠죠? 윤전부도 그중 하나입니다. 신문을 찍어내는 거대한 기계 윤전기를 다루는 부서 윤전부는 신문 제작의 최종단계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김왕복 부장
윤전기는 신문사 최고의 자산이기도 한데, 값이 수십억원에 이릅니다. 기자들이 기사를 써 편집부를 거쳐 지면이 완성되면 파일로 쇄판실에 전달됩니다. 쇄판실에서 화상으로 넘어온 신문을 필름으로 현상해 전송해주면 윤전부 직원들이 그것을 PS판(알루미늄판 같은 인쇄용 금속평판)에 얹고 빛을 줘 윤전기에 걸 수 있도록 굽습니다. 그 판을 실린더에 장착해 인쇄하면 바로 따끈따끈한 신문이 만들어지는 거죠. 김왕복 부장은 이곳에서 11명의 직원들과 낮 2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2조 2교대로 일을 합니다. 밤을 꼬박 새우면서 일하고 하루 쉬는 격일근무를 하고 있는거죠.

신문사 윤전부는 밤낮 가리지 않고 기계와 씨름해야 합니다. 시끄러운 소음 때문에 귀마개로 귀를 꽉 막고 외부와 철저히 차단돼 일을 합니다.

기계들에 둘러싸여 꽉 짜인 일상을 꾸려가는 김왕복 부장이 뒤늦게 학구열을 불태운 이유는 뭘까요? 게다가 혼자만 빛나는 대학 졸업장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18년째 그의 인생의 동반자인 아내 정서연(43·대성미생물연구소 사원)씨도 같이 받았습니다. 이 부부는 2001년부터 한국방송통신대 행정학과에 같이 입학해 6년 만에 함께 졸업했습니다.

집안형편이 어려워 대학을 가지 못한 김왕복 부장은 대학 생활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 있었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 직후 시작한 사회생활로 대학 진학은 꿈조차 꾸지 못했다네요. 그러던 중 아내가 “이젠 당신도 곧 40대에 들어서는데 자기계발도 하고 하고 싶은 것도 해봐야 하지 않냐”며 “일상생활에 필요한 지식이 많은 행정학과 공부를 같이 해보자”는 권유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결과 부부가 같이 떡~하니 졸업장을 받게 된 거죠.

사회생활도 하면서 공부하는 게 쉽지 않았답니다. 6년 만에 졸업한 것 보면 짐작되시죠? 그는 “6년 내내 시험 보는 기분이었다”며 “그만두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도 말합니다. 아내와 함께 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방송수업 외에 한 학기에 일주일 정도 학교에 가 직접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정기휴가도 가지 못하고 수업 듣고 시험 준비할 때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고 말합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아내와 술 한잔 걸치며 서로를 위로했고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합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아내에 대한 사랑을 과시했습니다. ‘회사 다니면서 공부하는 노하우’를 물으니 “아내와 함께 공부를 한 것”이라 답합니다. 15쪽이 넘는 리포트를 쓰려고 적어도 2개의 도서관에 들러 참고서적을 봤는데, 아내의 자료까지 찾아주면서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나요? 이들 부부는 서로를 위해 교과서 요점 정리도 해주고, 주말이면 도서관도 같이 가고, 대학 생활이 ‘또 하나의 데이트’였다고 합니다. 아내 정서연씨도 “공부 같이 하면서 연애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부부사이가 더 좋아졌다”고 했습니다.

김왕복 부장

그뿐만이 아닙니다. 아내를 더욱 기쁘게 한 건 남편의 변화입니다. 가사일 분담에 적극적이지 않던 남편이 학교생활 뒤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오전 7시50분에 아내가 출근하면 오후에 출근하는 김씨가 설거지를 해놓기 시작했고, 비번인 날엔 아내가 퇴근하기 전에 두 아들 밥 챙겨 먹이고 저녁식사를 준비해놓곤 했대요. 그는 “이젠 앞치마 두르는 것이 습관이 됐다”며 웃습니다.

김왕복 부장에게 <한겨레>는 어떤 의미일까요? 그는 <한겨레>를 “다니고 싶은 회사, 맘 편하게 다닐 수 있는 회사, 내 맘에 드는 회사”라고 요약합니다. 출판사에서 근무하다 1991년 경력사원으로 <한겨레>에 입사한 그는 “이전 회사 다닐때는 회사 가기 싫은 날이 많았는데, 한겨레에 오고 나서는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 없다”고 합니다. 졸업식날 장미꽃다발을 들고 졸업식장을 찾아주는 동료가 있고, 집으로 축하 화분을 보내주는 상사가 있는 <한겨레>는 그에게 ‘차가운’ 회사가 아닌 ‘따뜻한’ 회사입니다. 그는 사실 이전 회사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한겨레>라는 신문이 있어?”라고 물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이직 뒤 어느순간부터 자긍심이 생겼습니다. “다른 신문들이 정권에 빌붙어 해야 할 말 못할 때 <한겨레>는 비판의 칼날을 서슴없이 휘두르는 걸 보며 자랑스러웠다”고 하네요.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생각했으면 돈을 조금 더 많이 주는 회사로 옮길 생각했겠지만, 저는 지금도 행복하고 만족해요.” 김 부장은 요즘 행정학과서 배운 조직체계론이나 동기이론 등을 회사생활에 접목시켜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는 오늘도 집 근처 동사무소 문화센터에서 엑셀 강좌를 들으며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글 양선아 anmadang@hani.co.kr/편집국 편집4팀

사진 김윤섭 outskirts@naver.com/<하니바람> 사진가

사진 오른쪽부터 김왕복 부장과 둘째 용민군, 아내 정서연씨, 첫째 용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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