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3.28 19:45
수정 : 2007.03.28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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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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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전망대
보수주의자들은 대체로 ‘숫자’를 중시한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보수언론은 ‘사실보도’를 신봉한다. 이들은 ‘사실이 스스로 말하게 하라’는 명제를 기사 작성의 제일 원칙으로 여긴다.
물론 ‘숫자’와 ‘사실 보도’가 지고지순한 가치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수량화한 데이터가 사회 현상을 올바로 파악하기보다 오히려 왜곡할 여지가 있다는 반박은 과학철학계에서 그 유명한 실증주의 논쟁을 일으켰다. 언론학계에서도 사실 보도가 진실을 밝히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주장이 끊이지 않았다. 편향적 사실의 일방적 보도는 되레 진실을 가리는 장막일 수 있다. 두 분야의 논쟁은 아마 인류 역사가 존속하는 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보수주의를 취하고, 객관성을 담보하고자 ‘숫자’와 ‘사실’을 맹신하는 자세는 마뜩잖아도 트집 잡을 일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나라 보수언론은 보수답지도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실례다.
보수언론은 서울대와 일부 사립대 총장들의 입을 빌려, 또는 독자적으로 3불 정책을 압박하고 있다. 그 유력한 근거로 들먹이는 것이 지난해 7월 경제협력개발기구가 발표한 〈한국 고등교육 평가보고서〉다. 이들은 이 보고서가 3불 정책 폐지를 권고했다고 전한다. 이는 “명백한 오독이거나 와전”이라고 한국교원대의 정기오 교수가 조목조목 지적한 바 있다(〈한겨레〉 3월9일). 이 보고서는 오히려 우리나라 “일부 대학의 요구와 언론 논조에 밀려 3불 정책을 폐지하면 안 된다고 명시”했다.
보수언론은 3불 정책의 폐지를 요구한 주체도 마치 전국 158개 사립대 총장들의 모임인 한국 사립대학총장협의회인 것처럼 부풀렸다. 사실은 이 협의회 회장단의 일부 의견에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회장단 회의에 직접 참석한 한동대 김영길 총장은 심지어 3불 정책이 회의의 주요 안건이 아니었다고 밝혔다(〈한겨레〉 3월23일).
〈연합뉴스〉와 〈오마이뉴스〉는 지난 23일 각각 안동대 권영건 총장과 단국대 권기홍 총장을 인터뷰했다. 권기홍 총장은 “의견 수렴 없이 회장단이 기자회견해도 되는 건가. 나는 3불 정책이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권영건 총장은 사견임을 전제로 “분명한 것은 3불 정책 폐지가 대학 전체의 의견이 아니다”라며 “일부 대학 총장들의 주장이 전체 대학 총장들의 공감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사립대총장협의회를 산하에 둔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이다.
이처럼 부분을 확대하고 일부를 전체화하는 보수언론의 수법은 2주 전의 종부세 보도를 고스란히 재현한 것이다. 당시에도 보수언론은 종부세 대상자가 전체의 2.1%에 불과한데도 종부세가 마치 전 국민을 향한 세금폭탄인 것처럼 위장했다.
보수언론의 눈에 3불 정책은 고까울 게다. 그렇다고 보고서 내용을 자기 멋대로 뒤집고, 그것도 모자라 일부의 견해를 총의인 양 얼버무려서야 쓸까.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지만 거짓말쟁이는 숫자를 이용’하듯 사실은 신성하지만 보수언론은 사실 관계를 분탕질한다. 우리나라 보수언론을 ‘보수’라 명명하기조차 민망한 이유다. 더구나 그것이 여론에 영향을 끼쳐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할 속셈에서 의도된 것이라면, 이는 범죄행위다.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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