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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4.15 20:53 수정 : 2007.04.16 09:55

<미스터 스쿠프-사진기자가 목격한 현대사의 영원한 순간들>을 펴낸 사진기자 윤석봉씨.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사진기자 윤석봉씨 ‘미스터 스쿠프…’ 사진집 펴내

‘미스터 스쿠프(Mr. Scoop)’

<로이터통신> 기자 시절, 외국인 동료는 사진기자 윤석봉을 이렇게 불렀다. 특종(scoop)을 잡아내는 그의 능력과 투철한 기자 정신에 대한 존경을 담은 찬사였다. 그가 30여 년 동안 사진기자로 일하며 취재한 사진들을 모아 같은 이름의 사진집을 냈다. <미스터 스쿠프-사진기자가 목격한 현대사의 영원한 순간들>.

윤석봉 기자는 1967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2002년 <로이터>에서 정년퇴임할 때까지 30여 년 동안 현장을 지킨 ‘현장의 사진기자’다. 퇴임 뒤에도 이피에이(EPA)통신에서 2년 동안 일할 정도로 ‘현장’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현장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그의 카메라는 격동했던 한국 현대사의 현장에서 쉬지 않았다. 경찰봉에 맞아 피를 흘리는 대학생·최루탄에 쫓기는 시민들과 함께 뛰었고, 이산가족 상봉의 눈물·올림픽의 영광과 환호 등 모든 현장을 그는 사진으로 기록해 보도했다.

지난 1987년 7월 민주통일당 김영삼 총재 일행이 ‘국시 논쟁’을 제기해 구속된 유성환 의원을 서울구치소에서 면회하고 있다. 면회객으로 가장한 채 분해한 카메라를 숨겨 들어가 찍은 특종사진이다.
단 한번, 그도 현장을 떠난 때가 있었다. 1975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사건으로 강제해직돼 10여 년을 떠돌았다. 서슬 퍼렇던 군사독재정권 아래서 해직 언론인이 다시 언론계에 발을 들이기가 쉽지 않았지만, 윤석봉 기자는 1986년 <로이터>의 한국특파원으로 채용돼 ‘현장’에 돌아왔다.

실직 당시를 돌아보며 그는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무자비한 민중학살 현장을 고발하지 못한 것이 늘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뒤늦게 광주에서 일어난 비극을 알았을 때 느꼈던 분노는 5·18 기념식을 취재하려고 광주에 내려갈 때마다 마다 되살아났다.

1969년 흑산도 대간첩작전을 취재한 특종사진이 1988년 광주청문회에서 ‘광주 양민 학살’사진으로 등장해 논란이 됐던 사건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저인 ‘연희궁’에서 경호원들에게 폭행당한 사건, ‘국시’ 발언으로 구속된 유성환 의원을 구치소 안에서 사진 취재했던 일 등의 취재 회고기가 140여 장의 생생한 사진과 함께 실린 사진집은 2006년 4월 1일, 동아투위 위원들의 촛불시위 모습으로 끝난다.

“‘동아투위’가 이제 저에게 남은 마지막 ‘현장’입니다. ‘동아투위’의 투쟁을 기록하는 것이 저의 운명이라는 생각으로 아직도 카메라를 잡고 있습니다. ‘동아투위’가 간판을 내리면 저도 카메라를 내려놓고 쉬어야죠”


66살의 나이에도 여전히 ‘현장’을 지키고 있는 이 사진기자는 16일 오후 서울 한국언론회관 외신기자클럽에서 사진집 출판기념회를 연다. “외신기자로 큰 과오없이 정년을 맞을 수 있었던 데는 동료 사진기자 선후배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고마움을 전합니다”. 글·사진/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미스터 스쿠프…’ 사진집에 실린 윤석봉 기자의 사진. 유신에 맞선 재야 인사들과 지식인들이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 모여 민주회복국민선언을 발표하고 민주회복국민회의를 발족했다. 윤보선, 백낙준, 유진오, 이희승, 함석헌씨와 김영삼, 김대중씨 등 71명이 국민선언에 서명하였다. 서울. 1974.11.27.

윤석봉 기자가 낸 사진집 ‘미스터 스쿠프…’ 표지. 1991년 4.24. 서울대생들의 정부규탄 집회 중 한 시위학생이 경찰의 교내 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정문에 설치한 바리케이트에 불을 지르고 뛰쳐 나오고 있다.

‘미스터 스쿠프…’ 사진집에 실린 윤석봉 기자의 사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들이 동아일보 사옥 주위에서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다. 박정희 유신정권의 압력에 굴복한 동아일보사는 자유언론 실천에 앞장섰던 기자, PD, 아나운서 등 150여명을 1975년 3월 17일, 폭력으로 회사에서 쫓아내고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서울, 20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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