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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4.18 17:55 수정 : 2007.04.18 17:55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선배, 교토 생활은 어떠신가요? 걱정 마세요. 한-미 자유무역협정 싸움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푹 쉬면서 몸도 가꾸고 공부나 하다 돌아와 그때 다시 합쳐 싸우면 되십니다. 그런데 이땅의 방송 현실이 뭐가 그리 갑갑하셨는지, 이리저리 글을 쓰시더니 오늘은 방송위원회에 공개질의까지 하셨더군요. 가 읽어 봤습니다. 역시나 기발한 아이디어가 반짝입니다. 선배의 불만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현행 방송법에는 방송위원회 위원에 대한 징계 조항이 존재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정무직에 해당하는 강동순 위원의 경우는 이번 사건이 본인의 터무니없는 사적 술자리 주장에도 불구하고 배임죄에 해당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방송법에 적시해두고 있는 자격요건에 그런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위원회 내부에서 법률을 담당하는 실무자의 이에 대한 유권해석을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방송위원회 내부의 윤리규정이 있는지, 그 윤리규정에서는 이 같은 사안에 대해 어떤 조처를 하게 되어 있는지를 공개적으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참 못 말리겠습니다. 그렇게 궁금하시던가요? 방송위가 어떻게 ‘처리 중’인지는 모르겠지만, 제 나름대로 한 변호사에게 물어봤습니다. 유감이지만 법적 처벌은 어렵다고 하네요. 그래서일까요? “나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라며 사퇴할 뜻을 내비치던 강 위원은 이제 갑자기 “사적 발언 책임질 수 없다” “사퇴의사 없다”라고 버티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방송위원회의 권위, 방송위원의 윤리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도덕적 해이가 말릴 수 없는 극치의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합리적 판단이 먹히지 않는, 자율조정의 기능이 부재한 최악의 저질 판으로 전락했습니다. 방송위원들 스스로 품위를 책임질 때 방송 제작자들의 도덕적 실패를 추궁할 수 있겠죠.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고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 있을 때, 그때 비로소 방송위원회는 위임된 책무에 걸맞게 방송사의 공정성과 프로그램의 품격을 따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현 사태는 한 자격 미달인 위원의 엽기적 행각에 그치지 않고 방송위원회 전체의 정당성 위기로 직결된다는 점에서 정말 큰일입니다. 사회적 타락의 징조라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우리 사회가 언제 이렇게 뻔뻔해져 버렸을까요? 신자유주의 자본의 제국은 이렇게 우리에게 사회적 윤리의 타락이라는 불결한 선물을 선사한 걸까요? 〈시민의 신문〉 사태, 〈시사저널〉 사태도 “책임지지 않고 버티면 된다”는 잔인한 폭력 시대의 풍경에 불과합니다. 강동순 사태는 바로 이 타락한 시대, 윤리 붕괴 시대의 산물에 다름 아닙니다. 루이스 세풀베다는 최근 〈소외〉라는 책에서 이렇게 강력히 경고하더군요. “공포 속에서 성장한 사회는 무기이든 자본이든, 힘에서 나온 것은 모두 정당하게 받아들였다.” 정치권력, 자본권력, 미디어권력의 삼각동맹이 주도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으로 신자유주의의 천국이 될 이 땅에서 앞으로 이 말이 철칙으로 자리잡게 되지 않을까요? 무섭습니다. 권력의 도덕, 폭력의 윤리가 지배하는 이 땅에서 자라나는 미래 세대들이 대체 무엇을 보고 배울지 생각만 해도 섬뜩합니다. 타락한 도덕의 황무지를 배회할 괴물들, 그들이 뱉어낼 기괴한 궤변과 그로 말미암은 치명적 진실의 상처를 생각하면 너무나 두렵습니다. 미셸 푸코의 말처럼 사회는 보호되어야 할 터인데, 이 야만의 시대 그 방법이 잘 보이지 않는군요. 선배 답이 뭔가요?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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