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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국방송진흥원 초청으로 SOS 어린이 마을 가족과 자원봉사 어머니가 경기도 남양주 영화종합촬영소를 방문했을 때입니다. SOS 어린이 마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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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터 기고
어린이날, 어버이날….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사람들은 가족을 생각하고, 집을 떠나 있던 사람들은 부모님을 찾아뵙게 됩니다. 제겐 부모님이 여러 분 계십니다. 1986년 6월13일 태어난 저는 스물 두살입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의 사정으로 일산의 큰어머니께 맡겨졌습니다. 큰어머니는 길에서 장사를 하셨고, 유독 약해 잘 아프던 어린 저를 키우기엔 힘에 부치셨던 것 같습니다. 고민하던 중 이웃사람의 소개로 사회복지시설을 알게 되었고, 큰어머니는 그해 12월 6개월 된 저를 업고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있는 ‘시설’로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사정을 설명하였고, 그때도 지금도 그렇지만 시설에 입소하려면 구청(아동복지상담소)을 통해서 들어와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절차가 복잡하여 하루벌이로 힘들게 생활하시던 큰어머니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런 사정을 안 시설 원장님은 고민 끝에 대안을 내놓았습니다. 시설의 어머니들(사회복지사)을 불러 ‘받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입소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절차에 따라 마냥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몇명의 어머니가 왔지만 받아 키우겠다는 사람은 없었고, 마지막으로 한 분에게 의견을 더 물어보기로 하였답니다. 그때 오신 분이 지금의 ‘어머니’입니다. 나중에 안 얘기지만 “원장님이 사무실로 오라고 해서 가 보았더니 ‘한 아기가 있는데 받겠느냐’고 해서 직접 보고 결정하겠다고 하고, 아이를 만나 안았더니 빤히 나를 쳐다보는데 그 눈빛이 하도 끌려 키우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신월동의 ‘SOS 어린이 마을’(시설장 허상환, www.seoulsos.com)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시설에서 만난 동생과 형님 누나들과 함께 중학교,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대학에서는 시설의 도움으로 장학재단의 장학금을 받으며 열심히 공부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학기 이런저런 사정으로 장학금을 받지 못해 현재는 도메인 등록업체에서 1년간 계약 파견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시설에서 생활하며 많은 어려움과 고통·좌절 속에서도 지금까지 건강하고 씩씩할 수 있었던 것은 원장님을 비롯해 기숙사 선생님, 많은 어머님의 도움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유로 남들은 한두 장이면 끝나는 등본이 저는 10장이 넘게 나오는 것입니다. 대학교로 돌아갈지, 아니면 자립하게 될지 아직 정해진 건 없지만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 선택을 존중해주실 분들이 계시기에 저는 지금까지 잘 자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스물두살 된 5월, 그동안 키워주시고 항상 도움을 주셨던 ‘어머니’, 그리고 은혜를 베풀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정순욱 whsos@inames.co.kr/<하니바람>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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