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7.04.29 17:24 수정 : 2007.04.29 17:24

총기난사 사건으로 희생된 이들을 위해 조지메이슨대학 학생들이 촛불 추모식을 하고 있습니다. AP 연합

홀씨통신 = 버지니아 사태를 보고

“어? 한국 애잖아!” 아들의 외마디를 듣는 순간, 굵은 소름과 함께 잠시 정신이 아뜩했습니다. ‘이제 죽었구나. 황인종이라면 치를 떠는 냉정한 이곳에서 우리 아이들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겠구나. 이 일을 어째.’

저도 아이들 ‘엄마’이기 때문일까요. 이 사건이 몰고올 전체 이민사의 파장보다는 우선 내 새끼를 챙기는 본능적인 이기주의가 나도 모르게 발동했습니다.

‘범인은 한국인. 조승희, 버지니아 공대 영문학과 4학년. 초등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 간 1.5세대. 세탁소를 경영하는 부모와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한 누나. 극도로 외톨이였던 고독한 학생.’ 뉴스가 쏟아졌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낯선 나라에서 자식들을 위해 허리가 휘도록 돈 버는 일에만 매달렸을 조군의 부모 심정이 오죽할까. 자식을 향한 수고와 희생이 나의 그것과 연대감을 맺어 가슴이 파도를 쳤습니다.

이런저런 뉴스를 보면서 조승희 사건은 이민 1.5세대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 즉 정체성 부재와 괴리감이 낳은 부산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철저히 이방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씁쓸한 ‘이민’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현지에서 태어난 2세와는 달리 주류사회에 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한국에서 막 건너온 유학생들의 정서에도 편입될 수 없는 그야말로 낀 세대가 바로 1.5세대입니다. 언젠가 토론토의 교민신문에 ‘슬퍼맨의 고뇌’란 글이 실린 적이 있습니다. 중학교 때 이민을 와서 요크대학을 졸업한 한 여학생의 칼럼이었는데 그걸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슈퍼맨이 아니다. 영어를 못하는 부모님을 위해 담뱃가게의 계약서부터 은행을 드나드는 일, 아파트의 각종 서류들, 관공서의 전화처리, 심지어 동생의 학교문제까지 떠맡아야 하는 우리의 스트레스는 가혹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쩌다 일을 매끄럽지 않게 처리하면 ‘영어실력이 그 정도냐’는 서릿발 같은 핀잔을 들어야만 했다. 중학교 정도의 아이가 아무리 영어를 해봤자 인생의 문제까지 해결할 정도의 어휘나 생각이 오죽하겠는가. 학교에서는 따가운 인종차별을, 집에서는 슈퍼맨의 기대가 늘 나를 짓눌렀다….’

큰아이가 열두살, 둘째가 다섯살 때 이곳 캐나다로 왔으니 제 아이들도 이민 1.5세대인 셈입니다. ‘그랬을 거야. 은종(큰아이)이도 저랬을 테지. 미안하다. 그리고 고마워’. 우리 부모들은 1.5세대의 고뇌와 방황을 그저 먹고사는 일에 급급해 어쩔 수 없이 외면했는지도 모릅니다.

버지니아 공대가 조승희의 개인적인 고뇌나 외로운 영혼 세계에 대해 미리 손쓰지 못했던 것을 두고 자성의 목소리를 내며 용서와 애도로 그의 마지막 길을 장식했습니다. 그들의 성숙한 사고와 관용의 힘에 박수를 보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게 있습니다. 우리는 왜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리는가. 좋은 학교나 성공에 집착해 눈에 보이지 않는 더 소중한 것을 잃고 있는지도 모른 채 말입니다.

힘든 여건 속에서도 꿋꿋하게 학업의 열을 다하는 이민 1.5세대 혹은 유학생들에게 용기를 잃지 말라는 말, 자식을 키우는 엄마로서 그저 당부할 뿐입니다.

박인숙 stephanie416@naver.com/<하니바람> 캐나다 리포터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