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5.23 17:48
수정 : 2007.05.23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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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적인 수준의 사격실력을 보여준 강지은(17·서울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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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당 노란점퍼 주문뒤 안 찾아가 공장 도산‘ 오보
항의 받고 기사도 정정보도도 아닌 ‘특이한’ 글 실어
<조선일보>의 의욕적인 ‘기획성 보도’가 잇따라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다.
굴욕1. “사격 천재에게 저격당한 조선일보의 오보”
<조선일보>는 5월10일치 1면에
“前 청와대비서관 딸 부정편입 혐의” 기사를 실어 “강태영 청와대 혁신비서관이 사격대회 출전 경험이 없는 자신의 딸을 서울체육고에 부정 편입시킨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았고 수사 진행중에 청와대에 사표를 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강 전 비서관의 딸이 사격 경험이 없는데도 편입을 위해 치르는 실기시험인 ‘전문기능검사’에서 ‘국가 대표’ 수준의 점수를 기록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당시 강 전 비서관의 딸은 대회출전 경력도 없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가 1면에 보도한 이후 연합뉴스, 문화일보, 중앙일보, YTN 등 매체들이 뒤이어 같은 기사를 쏟아냈다. 강 전 비서관쪽은 ‘부정 편입’ 의혹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전 청와대 비서관 딸, 사격경험 없이 체고 부정편입' 보도
입학 뒤 사격대회서 여고부 ‘12년7개월만의 신기록’ 세워
한편 지난 18일 경호실장기 사격대회 여고부 더블트랩 종목에서 <조선일보>가 ‘부정 편입’ 의혹을 제기한 강지은은 12년7개월 만에 여고부 기록을 갈아치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겨레 기사] 강지은 더블트랩 클레이사격 ‘금’…손혜경 기록 12년7개월만에 깨져
40발씩 모두 120발을 쏘는 이 경기에서 강지은은 110발을 명중시켜 2위를 무려 20발차로 따돌렸다. 종전기록은 1994년 10월 히로시마 아시아경기대회 때 손혜경이 세운 기록이었다. 이번 기록에 대해 변경수 국가대표 사격감독은 “믿을 수 없는 기록이다. 지금 당장 세계대회 우승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조선일보의 ‘부정 편입’ 의혹 기사가 실린 지 8일 만에 밝혀진 ‘사격 천재의 탄생’을 두고 누리꾼과 블로거들은 “사격 신동에게 사살 당한 조선일보의 오보” “천재 사격선수와 추잡한 언론”라는 포스팅을 올리며 이를 화제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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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2007년 5월16일 보도한 기사 .조선일보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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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2. “조선일보의 ‘옐로 콤플렉스’가 빚은 특종오보”
<조선일보>는 5월16일치 지면에 또 한번의 ‘특종’을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이날치 8면에
“노란 점퍼 15만장 주문해 놓곤…열린우리당서 1년 반 동안 안 찾아가 공장 문닫아” 란 제목의 기사를 실어, “2005년 11월 열린우리당 고위인사의 주문을 받고 한길봉사회 김종은(59) 회장이 노란 점퍼를 15만장 제작했지만,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찾아가지 않아 무려 18억원의 손해를 보고 공장이 도산했으며, 이에 따라 불우노인들에 대한 무료급식도 중단하게 되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조선일보 홈페이지의 머릿기사로 사진과 함께 주요하게 보도됐다.
조선일보는 김 회장이 “(계약을 맺은 사람이) 평소 알고 지내 온 분이라 별도의 계약서 없이 구두로 계약을 맺었다”며 “그분에게 노란 점퍼를 부탁한 사람도 워낙 잘 알려진 여당 정치인이라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이 회사가 노란점퍼 15만장을 보름안에 납품해달라고 ‘여당 고위인사’로부터 주문받았다고 밝힌 때는 2005년 11월로 “열린우리당이 2006년 2월 전당대회와 5월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이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 대해 열린우리당은 발끈했다.
송영길 사무총장 등 열린우리당 당직자 10여명은 17일 조선일보를 항의 방문해 “김 회장을 만나 확인해 본 결과 조선일보의 보도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님을 명백히 확인했다”며 편집국장에게 정정보도, 공개사과와 책임자 문책을 요구했다.
열린우리당은 △15만장을 우리당의 인사의 말만 믿고 구두계약을 했다는 점 △현행 선거법상 당원들에게 옷을 무료로 제공할 수 없음에도 우리당이 15만장이나 되는 물량을 신청했다는 점 △당시 실무책임을 맡았던 당 책임자들은 이와 관련해 조선일보 기자로부터 확인전화 1통 받지 않았다는 점을 조선일보 기사의 사실을 강하게 부인했다.
열린우리당은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우리당은 ‘노란색이면 무조건 열린우리당’이고 ‘열린우리당은 반드시 문제있는 집단’여야 한다는 조선일보의 이른바 ‘옐로 콤플렉스’가 빚은 어처구니 없는 대형 오보”라며 조선일보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가 의욕적으로 보도한 ‘노란점퍼 15만벌 먹튀’의 진실이 밝혀지기까지도, 여고생 사격선수 강지은 ‘부정 편입’ 의혹 보도 때처럼 1주일의 시간이 걸렸다. 23일 <조선일보>는 12면에 ‘특이한 형태’의 ‘글’(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5/23/2007052300033.html)을 실었다.
기사의 형태도, 알림의 형태도, 사과문의 형태도 아닌, ‘누가 썼는지’ 알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글’이다. 글의 제목과 본문 안의 문장은 ‘사과’와 ‘진심으로 사과를 표한다’라고 돼 있지만, ‘누가’ 하는지 ‘주어’가 없는 문장의 연속이다. 주어와 사과의 주체가 없는, 신문에서 찾아보기 힘든 ‘부실한 문장’이다.
한편 조선일보의 이 글이 실리자 열린우리당은 홈페이지에 “조선일보의 정정기사가 실렸다”는 알림을 띄우고, 명예훼손 소송 추진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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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23일치로 실은, '노란 점퍼 15만벌' 주문 기사에 대한 '특이한 형태'의 '글'. 사과의 주체가 없고, 사과를 언급한 문장에 주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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