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 ‘최남단 소식통’ 제주 허호준 기자
|
스포트라이트 = 한겨레 ‘최남단 소식통’ 제주 허호준 기자
‘비행기 배달’ 1판 보며 조마조마시간 쫓겨 보도 미룰때 속상해도
제주 소식은 ‘이 손안에 있소이다’ “다시 기자를 하라 해도 저의 선택은 <한겨레>입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한겨레 기자’임을 자부하는 그는 대한민국 최남단 제주의 ‘소식통’, 지역팀 허호준(45) 기자입니다. 1989년 입사해 지금까지 한결같이 지역기자로 활동해오고 있는 그는 한겨레의 창간 멤버나 다름없습니다. “지역기자라고 해서 특별히 힘들거나 고충은 없다”고 말하는 그지만 그동안 경험담을 들어보면 ‘평범’하지만은 않습니다. 제주도에서 한겨레는 소위 ‘비행기 타고 오는 신문’이라 일컬어집니다. 제주에서 현지 인쇄가 되지 않기 때문에 서울에서 인쇄를 하고 덕분에(?) 매일 ‘비행기’를 타는 ‘호강’을 누리고 있지요. 신문으로선 ‘호강’한다지만 기자에겐 결코 좋은 여건이 아닙니다. 서울에서 인쇄한 1판 신문이 막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도착하는 시간은 밤 10시. 신문이 배포되기 전 큰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그만큼 ‘낭패’도 없습니다. 어떤 사건과 사고가 발생할지 몰라 온갖 신경을 곤두세워 보지만 제주에 배포되는 신문은 1판이 전부라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사에 오·탈자가 생겨도 그냥 두고 볼 수밖에 없어 속상할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시간에 쫓겨 중요한 보도를 미뤄야 할 때”라고 합니다. 한겨레가 나이를 먹는 동안 그도 어느덧 올해로 기자 생활 18년차의 고참 선배가 됐습니다. 그러나 기자로 첫발 디딜 때의 초심을 지금도 잃지 않으려고 하는 신선한 ‘고참’입니다. 그런 그의 노력은 한겨레 ‘제주면’에서 찾아볼 수 있지요. 다른 중앙지보다 지역면이 활성화된 한겨레는 ‘제주면’이 존재하는 특별한 신문입니다. 한겨레의 영향력이 지역면에서도 입증되는 셈이지요. 그래서일까, 지역소식을 책임지는 기자로서 그 책임감도 남다릅니다. ‘제주’에 대한 소식은 오로지 그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기자로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를 물었습니다. 지난 2000년, ‘이장형·강희철 간첩조작 사건’에 대한 기사를 다뤘을 때라고 합니다. 군부독재 시절 ‘조작간첩’으로 몰린 이들의 억울한 사연을 취재해 보도했던 것이지요. 당시 이 기사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허 기자는 관련 단체에서 만든 기념패까지 받았습니다.
제주에서 태어나 줄곧 제주에서만 살아온 그에게 가장 큰 관심은 바로 ‘4·3 항쟁’입니다. 1990년 초부터 ‘4·3 연구소’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온 그는 2002년 4·3사건 당시의 고문관들을 미국 현지에서 취재하는 등 4·3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힘을 보태는 중입니다. “제주 4·3은 제주도에 있는 언론인으로서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입니다. 과거가 있어야만 현재가 있고 미래까지 알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중학교 사회담당 교사인 조정순(41)씨와 결혼한 지 만 9년. 그러나 그 흔한 여행도 한번 다녀오지 못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허진·10)은 엄청난 개구쟁이라고 합니다. 공주병이 심한 딸(허은·6)은 “이담에 커서 아빠와 결혼하는 문제를 생각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그는 휴일이면 차를 타고 중산간지역을 곧잘 찾는다고 합니다. 일년 365일, 제주는 그에게 매번 다른 모습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던데 18년 동안 한결같은 마음을 유지하고 있는 그의 비결이 무엇일까요? “훌륭한 선·후배 기자들이 많은데 부족한 나를 취재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자꾸 고개를 내젓던 그 ‘겸손함’ 때문일까요, 아니면 서글서글한 눈매에서 풍겨지는 ‘온화함’ 때문일까요. 아마도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과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글 김정미 movie_in@naver.com/〈하니바람〉 리포터, 사진 김기용 kppaj2@naver.com/〈한겨레〉 독자 겸 사진가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