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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24 17:20 수정 : 2007.06.24 17:25

삼랑진역

시인 박영희 독자

경남 밀양 삼랑진역에 땅거미가 지기 시작합니다. 삼랑진역은 전라도에서 온 경전선이 경부선과 만나는 곳입니다. 역 앞에 작은 무대가 마련되고 마이크며 간이 의자들이 놓여집니다. 박영희(45)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콘서트 ‘세상의 모든 역은 어머니를 닮았다’가 열리고 있습니다.

‘시노래 콘서트’는 지난해부터 시작됐습니다. ‘시 하나 노래 하나’(대표 한보리)가 전국의 간이역을 돌며 시인의 시에 곡을 붙여 노래를 부르는 행사입니다. 이번 콘서트는 박영희 시인의 신작 시집 <즐거운 세탁>과 르포집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의 출판을 함께 기념하고자 마련됐습니다.

시집과 르포집이 나오자 주변 지인들이 “책이 두 권이나 나왔는데 술 한잔 해야지”라며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시인은 그 말이 ‘배고프니 밥 달라’는 말처럼 들렸답니다. 그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을 만나 서로 술잔을 권하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드는 것에 출판기념회의 의미를 두고 싶었다고 합니다.

전라남도 무안이 고향인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초등학교만 겨우 마치고 열다섯 살 되던 해에 서울로 와 신문배달을 시작했습니다. 그에겐 신문만큼 좋은 교과서도 없었습니다. 당시 신문엔 한자가 많아 그는 글의 흐름에 맞춰 한자의 뜻을 짐작하며 읽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도 신문을 통해 눈치껏 배우고 세상의 어두운 이야기를 읽을 때는 그의 눈도 비판적으로 변해 갔습니다.

시인 박영희 독자
“창간 때부터 봐 오는데
비슷한 얘기 계속 하는 느낌”

“나는 기쁨·즐거움보다 슬픔·눈물·고통을 먼저 봐 버렸습니다. 주춤거리고 돌아보는 시를 쓰지 않으려 해도 안 되네요. 이미 본 세계가 많은데 무슨 수로 돌아갈 수 있겠어요? 설사 돌아간다고 해도 그것은 나에 대한 배신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양극화는 심각합니다. 글 쓰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은 직무유기입니다. 글은 양심이기 때문에.”

박 시인은 일제 치하 ‘광부 징용사’를 쓰려고 월북했다가 감옥에서 7년이라는 세월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런 그를 두고 7년 동안 잠을 자다 7일을 후회 없이 살다 가는 매미 같은 시인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한겨레를 창간 때부터 봐 오는데 솔직히 발전된다는 느낌보다는 비슷한 이야기를 계속 한다는 느낌입니다. 대학교수나 전문가들의 빈번한 기고글이나 칼럼보다는 현장의 낮은 곳, 다양한 목소리를 찾아내고 그것을 전하는 데 더 노력해야 합니다”며 한겨레에 따끔한 질책도 해 주었습니다.


공연이 시작되고 박 시인의 시에 멋진 선율이 붙여져 어머니를 닮은 삼랑진역 곳곳에 울려 퍼집니다.

“사는 동안 낮은 곳, 내 무릎 아래를 보자는 생각을 합니다. 되도록 걷고 열차를 타며 사람을 만나려고요. 시가 다양한 색깔로 피어나는 꽃이 될 수 있도록 그곳에서 꾸준히 작은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박 시인은 말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위로만 보고,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지 못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소외되어 힘들지만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그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의 시와 이야기가 가슴에 피는 꽃이 되기를 바라는 시인을 만나 무릎을 꿇고 세상을 보는 법을 배웁니다.

글 구민주 isiscjmj@hanmail.net/<하니바람> 리포터, 사진 김윤섭 outskirts@naver.com/<하니바람>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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