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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24 17:33 수정 : 2007.06.24 17:44

‘특종사진 제조기’ 이종근 기자

스포트라이트 = ‘특종사진 제조기’ 이종근 기자

한국보도사진전 대상(2005)·금상(2000)·우수상(2006), 한국사진기자협회 선정 이달의 보도사진상(2004. 7, 2007. 4, 2007. 5), 한국기자협회 선정 이달의 기자상 전문보도 부문(2004. 7, 2005. 1, 2007. 5) 수상.

수상 경력이 화려하죠? 하지만 정작 주인공은 이렇게 말합니다. “전 다만 셔터를 눌렀을 뿐인데…”. 수더분한 모습에 겸손의 미소를 띠는 그는 사진부 기획사진팀 이종근(38) 기자입니다.

1995년 <한겨레> 사진기자로 입사해 어느 덧 12년차. 그는 올해 3월부터 사진부 기획사진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기획사진팀은 그날그날 벌어지는 사건 취재 외에도 독자의 제보, 다른 매체의 짤막한 기사,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등에서 사진 소재를 직접 발굴해 심층 보도합니다.

지난 18일 <하니바람>이 그의 시사저널 노조 집회 취재에 동행했습니다. 이날은 ‘시사저널 기사 삭제 사건’이 벌어진 지 1년이 되던 날이죠. 취재는 아침 10시부터 서울 충정로1가 시사저널 본사 ∼ 중구 태평로 삼성 본사 ∼ 서대문구 북아현동 시사저널 사주 자택 앞으로 이어졌습니다.

세 곳에서 각각의 집회가 끝났을 때도 그는 계속 현장을 주시하며 쉽게 자리를 뜨지 않았습니다. “행사 전후로 더 실감나고 재밌는 사진이 많이 나와요. 행사의 정해진 틀에 얽매이면 정형화된 한 컷만 나오죠. 모든 언론사 사진이 엇비슷해져 버리는거죠. 그래서 저는 독자들에게 다른 시각의 사진을 보여주려고 노력합니다.”

섭씨 30도가 넘는 불볕더위에도 그는 수수한 긴팔 정장을 입고 뷰파인더로 현장을 응시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날씨가 더워 바지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연신 땀을 닦습니다. 더운 날 그는 왜 이런 옷을 입었을까요? “옷을 갖춰 입고 취재해야 할 경우가 종종 있어요. 갑자기 상갓집이나 고인의 빈소를 취재해야 하는데 옷 갈아입을 시간은 없잖아요. 옷도 하나의 전략 같아요.” 쉬는 날 아니면 청바지도 잘 안 입는다고 하니 그의 프로 정신을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특종사진 제조기’ 이종근 기자
틀에 얽매인 컷 재미없죠
다른 사진 보여주려 늘 긴장
특종? 마음 안 편할 때 많아

그는 지금까지 극적인 순간이나 슬픈 상황을 찍어야 할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난 4월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해 분신 후 사망한 택시기사 고(故) 허세욱씨의 모습을, 2004년엔 이라크 무장괴한에 납치·살해 된 고(故) 김선일 씨의 빈소에서 오열하는 여동생의 모습을 찍었습니다. 두 사진 다 그에게 수상의 영광을 안겼지만, 그는 늘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합니다. 얼마 전 그가 한국기자협회에 남긴 수상 소감에도 이런 소회는 드러납니다.

“두 취재물의 공통점을 보면 내겐 꽤 곤혹스럽다. (…중략…) 울부짖는 동생, 불구덩이 속에 있는 노동자와 나 사이의 현실적인 거리감은 초점거리 0.5미터에서 5미터에 지나지 않지만, 뷰파인더로 느낀 현실적인 거리는 아득했다.”

이 사진들이 인터넷에 오른 뒤 몇몇 누리꾼들이 ‘악플’을 달기도 했다고 하네요. 이 얘기를 하며 그는 한겨레 독자들께 꼭 감사의 인사를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한겨레 독자들은 이런 사진을 보면서도 제대로 된 진실을 잘 알아요. 악플도 안 달죠. 오히려 힘내라고 격려해 주세요. 제가 한겨레에 머물 수 있는 이유입니다.”

오후 1시 반, 취재를 마치고 신문사로 돌아오자마자 그가 디지털 카메라의 사진파일을 컴퓨터로 옮깁니다. “파일이 날아갈까봐….(웃음)” 그는 이날 취재한 사진 중 25개의 사진을 골라 보정 작업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진 중 다음날 지면에 실릴 사진은 단 한 장. 갑자기 사회적으로 더 큰 사건이 발생하면 사진이 신문에 게재되지 못할 때도 다반사입니다.

하니바람이 그를 취재한다는 말에 주변 사진부 선배들도 다가와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순발력과 더불어 깊이를 가진 사진기자입니다.” 이 기자가 역할 모델로 삼고 있다는 김봉규 기획사진팀장의 얘깁니다. 이런 그의 순발력 덕분에 입사 3년만인 지난 1998년, 사진부 막내임에도 불구하고 첫 해외출장으로 ‘98 프랑스 월드컵’ 취재를 갈 수 있었다고 하네요. 이때 그는 태어나 처음 비행기를 타봤다고 합니다.

그가 사진의 깊이를 보인다고 해서 아주 심오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는 사진이 “글을 알던 모르던, 아이부터 할아버지·할머니까지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언어”라고 말합니다.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의 사진기자인 그지만 정작 본인은 아직 스스로 만족할 만한 사진을 찍지 못했다고 합니다. “앞으로는 좀더 밝고, 재밌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극한 상황과 큰 슬픔을 사진으로 담아온 그이기에 그 바람은 더 간절하게 다가옵니다.

글·사진 홍해인 srhymer99@hanmail.net/<한겨레>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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