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6.24 17:40
수정 : 2007.06.24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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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바람] 이번 대선엔 누가 된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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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의 추억
정치부 기자들에게 이맘때쯤 가장 곤란한 질문은 아마 이런 것일 겁니다. “그런데 올 연말에는 누가 되는 거요?” 12월19일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고 ‘정답’을 얘기하면 이럽니다. “에이, 그런 뻔한 얘기 말고…. 기자가 그런 것도 몰라요?” 점쟁이도 아닌데 어떻게 미리 맞힙니까. 당장 포스터에 누구 얼굴이 붙을지도 모르는데요. 2002년 대선 때도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지만, 최소한 정당의 ‘대표선수’들은 확정이 돼 있는 상태였습니다.
자주 듣는 질문이다보니 요령이 생깁니다. 몇몇 까다로운 가정을 전제로 ‘이럴 가능성이 있다’, ‘이럴 가능성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나서 얼른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립니다. 길어지면 금방 바닥이 드러납니다. 특히 ‘대통령감’을 맘에 두고 있는 분이라면 자신의 선택을 확인받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에 잘못하면 분위기가 썰렁해질 수도 있습니다. 특정 정치인을 위해 ‘구전 홍보단’으로 활동하는 택시기사들과 얘기가 잘못 풀려 내릴 때까지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이제 기자가 된 뒤 세 번째 대선을 치릅니다. 1997년엔 사회부 기자로 대선후보 검증에, 부정선거운동에 더듬이를 세웠습니다. 2002년엔 정치부 정당팀에서 현장을 누볐습니다. 정당의 후보 선출 과정에 국민을 참여시킨다는 국민참여경선제도가 새로 시작한 탓에 대선을 두 번 치른 ‘잔인한’ 해였습니다.
97년 사회부 ‘부정선거감시’ …
2002년 정치부 ‘후보 동행취재’ …
2007년 ‘?’
그때처럼 하라고 하면 또 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당시 민주당은 3월부터 두 달 가까이 주말마다 전국 주요 도시를 돌면서 경선을 치렀습니다. 행사는 한나절이라지만 하루 이틀 전에 미리 가서 민심의 동향을 살펴야 했고 그 도시에서 경선이 끝나면 다음 도시로 보따리를 싸서 이동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각본 없는 드라마를 팔딱거리는 현장에서 지켜본다는 기쁨도 잠시 경선이 빨리 끝나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경선이 끝난 뒤에도 고된 날은 계속됐습니다. 선거운동이 본격화하면서 후보가 지방에 가면 동행 취재를 합니다. 몇 개 도시를 묶어 도는데, 2박3일을 돌고 서울에 왔다가 다시 3박4일 출장을 가는 식입니다. 후보는 그 빡빡한 일정을 모두 소화해야 하지만 기자들까지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언론사는 여럿이 번갈아서 출장을 갔는데 <한겨레> 민주당팀은 한 명만 고집했습니다. 그 한 명이 저였고 ‘유세 현장 전문 기자’라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별명이 붙을 정도였습니다. 2박3일 출장 갔다 와서 다음날 3박4일 짐을 들고 나가는 남편과 아빠를 보는 가족들의 시선은 싸늘했습니다.
불만이 왜 없었겠습니까. 왜 나만 보내냐, ‘말진’한테도 인권이라는 게 있다고 따지고도 싶었지만 오기가 생겼습니다. ‘그래, 다 쫓아다니다가 확 쓰러져 버릴 테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1인 단독 출장’의 효용성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애들 쑥쑥 낳으십시오. 이 노무현이 키워드리겠습니다” 같은 ‘고정 레퍼토리’가 언제 어느 대목에서 나올지도 알았고 나중에는 노 후보의 연설문 몇 개 버전이 머릿속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같은 내용, 같은 표현이라도 어디에 강조점을 두는지, 어떤 톤으로 말했는지 등이 중요한 대선 후보의 입장 변화에 제 ‘더듬이’는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표현이 달라지면 저한테는 딱 걸렸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큰 특종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한겨레>가 2002년 대선 당시 정확한 보도를 하는 데는 저도 힘을 보탰다는 것이지요.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서 다시 또 2007년 대선에 관해 취재하고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인 것처럼 낯설고 힘듭니다. 한나라당에서 경선다운 경선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처음이고, 그 상대편이 어떻게 정리가 될지 모르지만 국민들에게 후보선출권을 넘겨버린 완전국민경선제(오픈 프라이머리)도 처음이어서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전망하기 힘듭니다. 어떤 일이든지 오래하면 능숙해져야 하는데 매번 낯섦과 싸워야하는 것, 어쩌면 기자들의 숙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김보협 bhkim@hani.co.kr/한겨레21부 정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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