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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26 18:00 수정 : 2007.06.26 18:00

김재영 /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미디어전망대

디지털로 인한 변화는 혁명적이다. 산업구조, 여론 형성부터 생활방식에 이르기까지 문자 그대로 모든 걸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목격하는 변화는 빙산의 일각일 뿐. 전문가들은 이것이 미래 대변혁의 서막에 불과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인터넷은 디지털을 대표하는 매체다. 디지털 기술 없이 인터넷은 태어날 수 없었다. 인터넷은 디지털의 저변 확대를 촉진했다. 디지털의 영향은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매체나 전자제품을 선보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중심에는 ‘기능’보다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휴대전화를 이용한 문자메시지는 ‘엄지족’을 낳았는데 이들은 작은 액정화면을 통해 세상과 대화를 나누는 신인류다.

선관위는 대통령 선거 180일 전인 지난 22일부터 인터넷상에서 특정 후보나 정당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행위를 전면 금지했다. 누리꾼들은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선거벽보, 뉴스나 멍하니 보면서 입 꾹 다물고 지내다가 도장이나 찍으라는 얘기” “친구와 정치를 논했다는 이유로 잡혀가던 시절로 되돌아갔다” “코와 입을 막고 숨 쉬라는 격” 등 촌철살인 논평이 나오고 특정 후보를 공공연히 지지 또는 반대하는 ‘불복종’ 운동을 삽시에 전개했다.

대통령은 최근 자신에게 선거 중립의무 위반 결정을 내린 선관위를 향해 이렇게 일갈했다. “후진적 제도를 가지고 후진적 해석을 하고 있다.” 이 말은 선관위의 대선 180일을 앞둔 금지 조처에 딱 들어맞는다. 디지털 생태계와 엇박자일뿐더러 아날로그 시대의 표현자유 정신과도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표현자유는 원래 표현할 ‘거리’는 있으나 그것을 전할 ‘통로’를 갖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들은 어느 사회에서나 절대다수를 차지하지만 비주류, 평범한 이웃, 힘없는 서민이다. 아날로그 환경은 표현을 담아 매개하는 통로, 즉 언론에 아무나 접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신문과 텔레비전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발언을 수용할 물리적 여건을 구비할 수 없는 탓이다.

인터넷이 각광받은 것은 그 반사효과 덕분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드러내고 다른 의견과 맞장 뜰 수 있는 인터넷의 출현은, 근대의 산물이지만 이상에 머물렀던 표현자유를 비로소 현실화할 공간의 탄생을 의미했다. 이 점에서 혹자는 인류 역사를 ‘소수에서 다수로의 역사’라 부르기도 한다. 물론 인터넷이 ‘공론장’으로 기능하기보다 ‘난장판’으로 전락하는 경향도 보였다. 선관위 방침의 기초가 된 공직선거법의 취지 역시 조직적이고 의도적이며 근거 없는 선전을 솎아내 차분한 선거풍토를 조성하는 데 있다.

하지만 사이버 공간에서의 정치적 실천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질서에 따라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마치 일상의 대화처럼 때로는 상대방을 비방하고 욕하며 웃고 떠드는 분위기에서도 논쟁이 오간다. 이미 디지털 ‘원주민’들은 미니홈피, 블로그 같은 공간에서 일촌, 이웃으로 거미줄처럼 얽혀 댓글, 스크랩, 트랙백 등의 소통 기술을 활용해 서로의 생각을 나눈다. 바로 이것이 디지털 생태계의 문화적 실재다.

인터넷은 또 하나의 매체가 아니다. 표현에 목마른 이들이 있는 한 사이버 검색요원 330명이 아니라 3300만명을 동원해도 속박하기 힘든 일상이자 문화다. 디지털은 ‘몸’이 아니라 ‘정신’으로 이해해야 한다.


김재영 /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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