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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숙영 한세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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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전망대
평범한 사람이라도 텔레비전에 한 번 출연하면 당장 유명세를 타게 된다. 시를 쓰는 공무원이 한두 명이 아닐 텐데,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소개되면 그날부터 그는 ‘스타 공무원 시인’으로 이름값을 치를 수도 있다. 이처럼 텔레비전은 평범하거나 진부한 것마저도 특별하고 대단한 것으로 만드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이상한 힘을 지닌 이 상자는 점점 커지고 얇아지면서 혹은 점점 작아지고 가벼워지면서 시청자들을 끌어들인다. 특히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텔레비전은 특정집단을 구분하여 소외시키거나 편을 가르고, 대립시키는 기능을 한다. 이런 특성을 들어 프랑스의 학자 부르디외는 그의 저서 〈텔레비전에 대하여〉에서 텔레비전이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한 매체’라고 하였다. 기자들은 각자 다양한 성장 과정을 거쳤고, 자신만의 철학과 가치관을 지녔겠지만, 정작 그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뉴스는 약속이라도 한 듯 거의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현장에서 경쟁의 논리에 이끌리다 보면 기자의 개성을 발휘하기보다는 제한된 취재원과 취재 관행에 따르기 쉽다. 가장 관심을 끈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더 새로운 사실을 취재하거나 적어도 타 방송사가 보도하는 내용을 놓치지 않으려고 신경 쓰다 보면 그 내용은 비슷해지기 마련이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예비후보로 나선 사람들은 무려 80명을 넘고 있지만, 일반인들이 느끼기에 예비후보는 둘이거나 혹은 셋, 많아야 대여섯 명 정도이다. 지난 일주일 동안 아홉시 뉴스에 가장 많이 등장한 대선 주자는 단연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이다. 이 두 사람은 혹시라도 나라에 큰 뉴스거리가 생겨 자신들을 등한시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 같지만 지나친 걱정인 듯하다. 이들은 거의 매일 뉴스에 등장하고 있으며, 방송사는 이 둘에 관한 소식을 전해주는 것이 사명인 양 열심히 보도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이 여론조사 중재안을 거부한 것, 국정원 내통에 관해 공방을 벌인 것, 남북정상회담이 “대선용 깜짝쇼”라는 의견을 낸 것, 기싸움 벌인 것, 심지어 비빔밥 먹은 것까지…. 한나라당의 경선 후보를 제외하면 나머지 후보들은 거의 카메라의 시선을 받지 못하고 있다. 문화방송의 경우 ‘범여권 대선 주자, 손학규 때리기’라는 제목으로 지난 7일 뉴스데스크에서, 한국방송 역시 비슷한 제목으로 손학규 후보와 여권 대선 주자들을 다루었다. 지난 8일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하여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은 범여권 대선주자 네다섯 명의 반응을 살짝 다루었을 뿐이다. 한국방송이 지난 10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 정동영, 이해찬, 한명숙, 조순형, 권영길, 유시민, 원희룡, 노회찬, 천정배, 김혁규, 홍준표 등의 이름이 거론된다. 이렇게 많은 대선 주자들의 이름이 방송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던가? 시청자이자 유권자인 우리는 선거를 앞두고 수많은 의견이 교차하고 다양한 정책이 논의되기를 바라며 텔레비전이 이러한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 주었으면 한다. 각 정당과 대선 주자들이 깊이 있는 정치 철학으로 제시하는 비전을 들으며,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이끌 것인지 상상하며, 기쁜 마음으로 투표장에 나가기를 우리는 소망한다. 비빔밥 먹는 것까지 뉴스에 담는다면, 텔레비전은 정말 위험한 매체가 될지도 모른다.홍숙영 한세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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