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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8.26 23:02 수정 : 2007.08.26 23:02

대한산악연맹 구조대원들과 금강산 구급봉사대원이들이 함께 암벽등산로를 개척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스포츠부 권오상 기자

금강산 암벽길서 만난 북쪽 ‘그’
한바탕 너스레로 웃던 추억 새록

담배를 뻐끔뻐끔 피워대던 그가 꽁초를 주머니에 버리곤, 대뜸 농담을 건넸습니다.

“남쪽에선 회를 그렇게 좋아한다면서요? 그런데 돔회, 광어회, 도미회 등은 즐겨찾으면서도, ‘국회’는 아주 싫어한다구요?”

국회라는 말에, 언뜻 물회를 떠올렸지만 그 다음 얘기를 듣고선 ‘회’ 얘기가 아닌 것을 금방 알아챘지요.

“또 갈치, 넙치, 멸치 등은 잘 먹지만, ‘정치’는 쳐다보지도 않는다는데~, 그렇습네까?”

“하하하~”

한바탕 함께 웃고 말았지만, 뒤가 개운칠 않았습니다. ‘이 녀석이 도대체 남쪽 험담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어떻게 반격이라도 해야 할까, 아니면 점잖게 웃고 넘어갈까, 1~2초 사이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가는데, 틈을 주질 않고 한마디 더 늘어놓는 겁니다.


“자동차가 그래 많아서리, 환경 오염이 심각해질 텐데, 건강들은 어떻게들 챙기시나요?”

가만 듣다 보니, 말솜씨가 제법인데다, 던지는 화두가 그냥 웃고 넘길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북측도 농업과 산업이 발전해서 식량도 자급자족하고, 더 번영해야 할 텐데 안 그런가요?”

아주 평이한 반격에 지나지 않았는데, 돌아온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없으면 나눠먹고 하면 되지요. 욕심이 더 문제가 아닙네까?”

뒤통수를 보기 좋게 한방 맞은 기분이었죠. 나이는 저보다 15살 이상 더 어린, 북쪽 말로는 산을 함께 오른 ‘동무’였는데, 그만 그의 빼어난 화술에 판정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게 두달 훨씬 전 일이었습니다. 때는 6월12일 오전이었고, 장소는 눈부신 햇살이 화사하게 내려앉는 금강산 구룡폭포 옆 절벽 상단부 바위 틈바구니였지요.

고개를 휙 돌린 그가 집선봉 쪽을 한참 바라보더니 전망대에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한다고 했습니다. 맨눈으론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 일본 출장 때 도쿄 아키하바라 전자상가에서 샀던 성능이 꽤 좋은 미니쌍안경을 배낭에서 끄집어냈지요. 들여다보니, 정말 옆으로 떨어질 것만 같아 보이는 가파른 정상 능선길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금강산 최고의 전망대지요. 집선봉 안쪽으로 펼쳐진 암장의 능선들이며, 이쪽 구룡폭포에서 반대편 내금강 쪽까지 전망이 아주 좋습네다.”

너스레를 떨던 그가 “그거 한번 봐도 되겠습네까?”라고 하기에 건네주었는데, 말 많던 그가 쌍안경을 잡더니 한 20여분간은 이곳저곳 둘러보느라 조용해졌습니다. “잘 봤습네다.”

배낭 안에 있던 초콜릿이며 사탕을 나눠 먹으며, 보낸 게 2시간 가까이 돼가자 그가 따분함을 못 이긴 듯 “아~ 왜 이리들 안 내려옵네까? 배고픈데~”라고 또 한마디 내뱉습니다.

대한산악연맹 산하 전국 산악구조대원들과 북쪽의 명승지종합개발국 산하 안전봉사요원들이 함께한 금강산 남북합동암벽길 개척등반 현장이었습니다. 밑에서 올라온 개척조와 위에서 개척코스를 정찰한 정상조가 이곳에서 만난 뒤 다시 정상으로 루트를 개척하며 올라간 뒤 좀처럼 내려올 기미가 없었습니다. 그와 함께 꼼짝없이 절벽 틈바구니에 갇혀버린 것은 우리에게 하강 자일이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마침내 남북이 합동으로 루트 개척에 성공한 뒤 하강하는 다른 대원들의 자일에 몸을 맡겨 천길 낭떠러지 구룡폭포 아래로 내려가니, 오후 3시였습니다.

허기진 배를 달래며 관폭정―삼국시대 이전부터 지은 누각으로 구룡폭포의 장관을 구경하기 좋은 장소―에 오르자, 명승지개발국 직원들이 손수 차려놓은 점심식사가 반갑기 그지없었지요. 이날 새벽 잡은 삶은 돼지고기, 가자미튀김에 미나리와 오이무침, 김치와 김밥, 그리고 상추 등 각종 쌈까지 그 맛이 고향을 느끼게 했고,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도 나게 했습니다. 정성도 그렇거니와 공해 없이 자란 농수산물과 채소의 담백함에 함께 내놓은 북쪽 명술 들쭉술이 술술 들어가더군요. “한사람당 한잔씩입네다”라고 ‘감시’하는 북쪽 대원의 눈을 피해 몰래 한잔을 더 들이켜게 한 주범은 다름 아닌 아름다운 금강산과 그들의 소박한 정성, 합동 등반의 감동들이었지요.

개척팀과 함께 등반했던 필자.(왼쪽)
관폭정에서 기념촬영을 마친 일행은 이날 저녁 고성항 횟집에서 작별 만찬을 나눴습니다. 40도짜리 들쭉술 40병이 서로의 작별을 달래기엔 너무도 부족했지만 다음을 기약해야 했습니다.

낮에 꼬박 2시간을 바위에 갇힌 채 많은 얘기를 나눴던 북쪽 리광철(28) 대원이 한두잔 술에 얼굴이 벌게진 뒤 말을 건넵니다. “기자 동무, 아까 그 쌍안경 징표로 주고 가면 안 되겠습네까?” 주저없이 배낭에서 꺼내 건네주니 좋아하는 모습이 마치 동생 같고, 한식구 같더군요.

문명의 이기에 호기심이 발동한 그가 남쪽의 풍부한 문화를 접촉하면 어떻게 될까 생각도 해보았지요. 말로는 자존심을 세우며 그럴싸한 얘기를 늘어놓았지만 역시 그들에게 남쪽 세계는 여전히 궁금한 게 많아 보였습니다.

등산단체가 없는 북쪽, 그래서 그들에겐 전문산악인이 없고, 등산 문화도 없습니다. 이번 합동등반은 남북의 에베레스트 합동등반을 꿈꾸는 대한산악연맹의 끈질긴 노력 속에 이뤄졌지만, 여전히 그들에게 등반은 생활과 너무 거리가 먼 ‘고급 스포츠’였던 것입니다. 2박3일의 등반 취재로써 남북이 산을 통해 마음속의 따뜻함을 나눌 수 있었다는 점에서 통일이 멀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얻었습니다.

글·사진 권오상 kos@hani.co.kr/편집국 스포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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