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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9.11 19:15 수정 : 2007.09.11 19:15

홍숙영 한세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미디어전망대

“우리가 과거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질수록 친밀한 인간관계를 형성할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프랑스 그레노블대 철학교수인 질 리포베츠키는 그의 저서 〈공허의 시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를 속박하던 전통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은 대가로 우리는 외로움과 공허를 얻었다. 고독을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자신을 잘 포장해 타인에게 알리고자 온갖 정성을 다한다. 블로그와 미니홈피에 올린 연출된 사진과 동영상, 멋진 글을 통해 타인과의 소통을 꾀하는 동시에 타인으로부터 사랑받으려 애쓴다. 일종의 나르시시즘에 빠져 타인과의 소통을 위해 손을 내미는 모습이다.

티브이 토론은 이러한 현대인을 결집시키고, 소통하게 하며, 미디어가 공적 책임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선거 때가 되면 티브이 토론은 민주주의의 신성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곤 하였다.

지난 9월 6일, 문화방송의 〈100분 토론〉이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하고 첫 손님을 맞았다. 바로 대통합민주신당의 예비경선을 통과한 다섯 명의 대권 도전자들이었다. 밤 11시로 시간도 앞당기고 시민논객의 수도 40명에서 100명으로 늘린 개편 방송의 시청률은 5%를 기록했다고 한다. 평소 시청률이 2%대에 머물렀다고 하니 두 배 넘게 급상승한 셈이다.

무엇보다 큰 성과는 재미없는 토론에서 재미있는 토론으로의 전환이었다. 적당한 긴장과 적당한 유머, 정보와 재미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토크쇼보다는 진지하고, 뉴스보다는 가벼운 토론 프로그램의 진화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손학규, 정동영, 유시민, 한명숙, 이해찬.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다섯 후보들의 미디어적 재능도 놀라웠다. 그들의 의상은 단정했고, 시선 처리와 제스처는 자연스러웠으며, 언어를 사용하는 기법도 뛰어났다. 즉각적인 반박을 자제하였고, 상대의 말을 일단 수긍하며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하다가 일침을 가하는 기법을 주로 사용하였다. 상대 후보를 실컷 띄워주는가 싶으면 어느새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있었으며, 어떠한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달변가인 그들은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았으며, 온화하지만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100분을 서서 견디었다.

영상시대의 정치인은 정책과 비전뿐 아니라 티브이 토론에 나와 방송인 못지않은 전문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 보인 셈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쉬운 점도 있었다. 미인대회에 나와서 ‘세계 평화’를 위한 메시지를 전하며 미소 짓는 여성들처럼 판에 박힌 듯한 모습을 보면서 문득 인간적인 면모가 그리워졌다. 자신의 과오에 대해 인정하기보다는 합리화하면서, ‘나’를 드러내기에 급급한 모습들이 마치 나르시시즘에 빠진 현대인들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역설적으로 대리모에 대한 의견을 묻는 유시시 질문을 잘못 이해한 한명숙 후보가 대리모 제도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하며 실수를 범한 부분이 오히려 토론이 사전 각본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로 느껴졌다.


우리가 바라는 건 매끈한 말솜씨보다는 다소 어눌하더라도 인간적인 말투, 조금은 어설퍼 보이더라도 진실한 눈빛으로 시청자를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정치인이다. 우리는 전문 방송인이 아니라 공허한 시대, 공통의 관심사를 찾아내고 응집시킬 수 있는 진정한 리더를 원한다.

홍숙영 한세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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