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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표 언론인·전〈한겨레〉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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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전망대
“태산이 울릴 정도로 요란하더니 겨우 쥐 한 마리”라고 했던가? 곧 중죄인으로 구속될 것 같던 신정아씨와 변양균씨에 대해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신씨가 학력을 위조했다는 것과 신씨와 변씨가 부적절한 관계였다는 것, 그리고 변씨가 신씨를 위해 여기저기 압력성 청탁을 했다는 것이 전부다. 검찰은 구속영장을 재청구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지만, 언론보도를 보면 수사는 벌써 파장 단계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달 18일 법원의 신씨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이 “사법의 무정부상태를 야기하는 무책임한 처사”(구본민 서부지검 차장검사)라고까지 반발하던 검찰의 태도와는 아주 대조적인 분위기다. 그러면 신정아 사건을 두고 검찰도, 언론도 너무 흥분했던 것인가? 그렇지 않다. 흥분한 쪽은 언론이지 검찰은 아니다. 사람들이 이 사건 수사에 관심을 가진 것은 대형 권력형 비리사건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은 언론의 촉각을 신정아·변양균 두 사람의 부적절한 관계와 이로 인한 변씨 개인의 공직자로서의 부적절한 처신 쪽으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검찰 수사가 두 사람의 개인비리로 좁혀진 이상, 언론은 독자적인 취재망을 동원하여 권력형 비리 여부를 적극적으로 추적하거나, 추적취재가 어려우면 수사의 추이를 관망하면서 흥분을 가라앉히는 쪽으로 나아가야 했다. 그것이 이 사건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에 올바로 부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언론은 계속 흥분을 가라앉히지 않고, 신씨 본인 및 신씨와 변씨의 관계에 대한 시시콜콜한 가십거리들을 쫓아다녔다. 신문이 표방하는 ‘정론지’, 방송이 표방하는 ‘공익성’이라는 구호가 무색하게 되었다. 검찰의 냉정한 계산과 언론의 이상흥분이 빚어낸 신정아 사건의 과열보도는 10월에 접어들면서 지면에서 사라지고 있다. 검찰이 언론에 대한 수사정보 제공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태도 변화는 국민적 관심을 남북 정상회담에 집중시키기 위한 잠정적인 조처일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검찰의 최근 태도는 잠정적인 조처라기보다 사건에서 손을 떼기 위한 과정의 하나일 수도 있다. 검찰은 권력형 비리의 적나라한 모습이 파헤쳐지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신·변 두 사람의 ‘구속’이라는 전과라도 보여주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낄 것이다. 이에 따라 두 사람에 대해 이리 찔러 보고 저리 뒤집어 보지만 뚜렷한 구속사유를 찾을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 그런 검찰의 고민이 뒤늦은 광범한 압수수색이라는 오버액션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검찰이 요즘 사건의 진실을 가리자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을 구속할 만한 자료를 찾아 헤매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 검찰은 스스로 딜레마에 빠졌다. 그런 정도의 개인비리라면 검찰이 그토록 요란하게 수사를 벌일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신정아 사건이 대형 권력형 비리로 연결된 것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일은 검찰에 기대할 수 없다. 검찰은 이미 이 사건의 성격을 신·변 두 사람의 개인적 비리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부분은 언론의 몫이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언론이 행한, 도를 넘은 개인 사생활 보도가 권력형 비리의 문을 열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었다면, 두 사람, 특히 신씨에 대해 저지른 사생활 침해의 횡포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성한표 언론인·전〈한겨레〉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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