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0.30 19:25
수정 : 2007.10.30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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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표 언론인·전〈한겨레〉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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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전망대
대선후보들이 쏟아내는 수많은 말과 정책, 그리고 과거의 행적들을 검토, 분석하여 유권자들에게 후보 선택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언론의 검증기능이다. 언론의 검증은 후보들이 ‘꾸며서 보여주는 얼굴’이 아니라 ‘진짜 얼굴’이 드러나게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기능이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에서 언론의 후보검증 기능은 살아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그 대답은 “아니오”이다.
최근 대선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유권자들의 생각은 매우 복잡하다. 이명박 후보가 비비케이(BBK)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이 없다는 주장은 믿을 수 없지만, 그가 관련되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며, 결국 이런 상태로 공방전만 끝없이 계속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식을 강화시킨 책임은 바로 언론에 있다.
비비케이에 관한 언론 보도는 이 후보의 연루의혹을 제기하는 대통합신당과 이를 방어하는 한나라당의 공방전을 중계 방송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사는 으레 “대통합신당이 연일 비비케이 의혹을 확산시키기 위해 전력을 쏟고 있으며, 한나라당은 이를 정치공작으로 몰아붙였다”는 말로 시작한다. 초등학생들도 가질만한 의문도 언론은 ‘대범하게’ 그냥 넘긴다.
29일치 <중앙일보> 등은 신당 정봉주 의원의 “비비케이는 이명박 후보가 공동대표로 있던 엘케이이(LK-e)뱅크가 100% 출자한 자회사라는 하나은행 공식문서가 나왔다”는 주장을 보도했다. 정 의원은 “문제의 하나은행 문서는 ‘내부결재를 받기 위한 품의서’”라고 주장했지만, 한나라당의 박형준 대변인은 “정 의원은 하나은행의 결재품의 문건에 불과한 것을 마치 ‘정식 계약서’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정 의원의 주장에서는 나오지도 않은 ‘정식 계약서’를 들고 나온 박 대변인의 빗나간 반박조차 언론은 그대로 전달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나마 <한겨레> 등 일부 신문이 비비케이 사건의 진실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을 줄기차게 벌이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지난 26일치 <한겨레>는 ‘증권사 대표로 재계 복귀한 이명박씨’라는 부제가 달린 <중앙일보> 2000년 10월 16일치 인터뷰 기사를 이 후보 쪽이 해명해야 할 자료로 제시했다. “올 초 이미 새로운 금융상품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엘케이이 뱅크와 자산관리회사인 비비케이를 창업한 바 있다”고 말한 부분이다. 인터뷰 기사의 내용에 대해 이 후보 쪽은 “그런 말을 한 일이 없다”고 부인했었다. 스스로 보도한 인터뷰 기사의 내용을 부인하는 이 후보 쪽의 주장에 대해 중앙일보 쪽이 가타부타 말이 없었던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태도였다.
비비케이의 진실은 한 유력 대선후보의 도덕성과 정직성을 가름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이다. 언론은 김경준씨가 귀국해서 입을 열 것인가 하는 것이 태풍의 눈이라고 보도한다. 그럼에도 미국에 가서 김씨를 만나 비비케이의 진실을 추적하는 언론은 극소수이다. 김씨가 서울로 와서 스스로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가? 언론은 비비케이의 진실이 무엇인가를 가려내기 위해 독자적 취재에 나서야 한다. 언론이 진정한 검증을 포기한다면 유권자들은 유력 후보를 신뢰할 수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갖지 못한 채 투표장에 가야하는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성한표 언론인·전〈한겨레〉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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