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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숙영 한세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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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전망대
각 정당의 경선이 끝나고 후보가 정해지자 모두들 대선판이 너무 싱거워졌다고 한탄하는 분위기였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독주가 이어지면서 흔히 말하는 대선의 ‘흥행’ 요소가 빠져 버린 것이다. 이 후보는 도곡동 땅에 이어 비비케이(BBK) 의혹에도 겉으로는 태평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러던 차에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등장했다. 경선을 무시하고 뒤늦게 버스에 오르려는 그의 무임승차는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리는 일이겠지만, 정책이나 정당보다 사람과 조직을 중시하는 우리의 정치풍토를 감안한다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어쨌든 밋밋해 보이던 대선에 새로운 변수가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지난달 23일, 텔레비전을 통해 그동안 잊혀진 인물이었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를 만날 수 있었다.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은 저녁 뉴스에서 이회창 전 총재의 지지자들이 출마를 촉구하는 집회를 가진 것과 민주연대 21이 출마를 반대하는 내용을 나란히 담았다. 10월24일, 한국방송 <뉴스 9>는 이회창 전 총재의 대중연설을 다루지 않았으나 문화방송 <뉴스데스크>는 이와 관련한 기사를 내보냈다. 이 전 총재는 이 연설에서 “현실정치에서 떠나 있었지만 여러분과 함께 이 몸을 던져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었으며, “대선에서의 표를 의식해 수구 꼴통으로 몰릴까봐” 두려워하는 보수를 정면으로 비판하였다. 그러므로 이 전 총재 자신은 수구 꼴통으로 몰리더라도 할 말 하는 진정한 보수의 목소리를 내겠다는 선언이었다. 이회창 전 총재가 본격적으로 뉴스에 다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0월29일부터였다. 기자들이 들어대는 마이크나 카메라에 그는 침묵으로 일관했으며, 방송은 그의 한결같은 침묵을 담았다. 10월30일, 한국방송은 여론조사의 결과를 토대로 이 전 총재가 이명박, 정동영 후보에 이어 13.7%의 지지율을 올리고 있다고 하였으며 그로부터 사흘 뒤인 11월1일, 문화방송 여론조사에서는 이 전 총재의 지지율이 2위로 올라서 있었다. 이 날 문화방송은 여론조사 결과와 불법대선자금, 이에 대한 이회창 전 총재 쪽 입장 등 세 건의 기사를 내보냈고, 그 다음날은 무려 여섯 건의 기자 리포트가 잇따랐다. 한국방송은 이틀 동안 각각 두 건의 관련 기사를 방송하였다. 말씀드릴 게 없고, 때가 오면 말하겠다며 침묵하는 이회창 전 총재의 주위를 뱅뱅 돌던 방송은 친절하게 여론조사를 해 주었고, 그러는 사이 3위였던 지지도는 어느새 2위로 성큼 올라섰다. 이회창씨의 출마에 대하여 국민의 60% 이상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데도 방송은 그의 출마가 가져올 정치적 퇴보와 역사적 퇴행은 간과한 채 한나라당 내부의 ‘분열’이나 ‘갈등’ 또는 ‘내홍’으로만 다루었다는 점에서 동반 퇴행이라는 멍에를 벗기는 힘들 것이다. (이회창의) 출마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창사랑’의 결연한 모습을 보여주는 방송의 객관성과 함께 이것이 우리 정치를 얼마나 후퇴시키는지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담아냈어야 했다. 대선판에 결정적인 흥행요소가 생겼으니 구경은 할 법하지만, 인간의식의 진전과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방송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홍숙영 한세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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