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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2.18 20:12 수정 : 2007.12.18 20:12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미디어전망대

신문은 무엇으로 사는가? 요즘 비비케이(BBK) 의혹을 보도하는 신문들을 보고 생기는 의문이다. 사실을 징검다리로 삼아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비비케이의 관계를 말해주는 ‘사실’은 널려 있다. 이 후보 스스로 밝힌 경우도 여러 번이다. 그럼에도 언론은 사실의 징검다리를 건너려 하지 않는다.

〈중앙일보〉에서 우리는 그 사례를 본다. 〈중앙일보〉 2000년 10월 16일치에는 ‘증권사 대표로 재계 복귀한 이명박씨’라는 인터뷰 기사가 실려 있다. 이 기사는 기자가 “증권업은 생소한 분야일 텐데”라고 묻자 이 후보는 “올 초 이미 새로운 금융상품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엘케이(LK)이뱅크와 자산관리회사인 비비케이를 창업한 바 있다”고 대답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후보와 비비케이의 관계가 쟁점이 되자 이 후보는 “비비케이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거듭 부인하고, 〈중앙일보〉 인터뷰 기사가 “오보”라고 주장했다. 이쯤 되면 ‘오보’를 한 것으로 취급당한 신문 쪽에서 반론이나 해명기사라도 나올 법한데 〈중앙일보〉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결국 “비비케이를 창업했다”는 이 후보 인터뷰 기사는 이를 “오보”라고 말한 이 후보의 주장에 가려져 빛을 잃은 듯이 보였다.

더 놀라운 일은 이 후보가 스스로 “비비케이를 창업했다”고 말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공개된 이후에 일어났다. 이 동영상은 이 후보가 2000년 10월 광운대에서 행한 특강을 담은 것이다. 그는 이 특강에서 “금년 1월에 비비케이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하고 이제 그 투자자문회사가 필요한 업무를 위해 사이버 증권회사를 설립하기로 해서 …”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자 이 후보 쪽에서는 이 후보의 이날 특강 내용은 동업자인 김경준씨를 도와주기 위해 좀 과장해서 말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그런 (동영상에 나온) 정도의 이야기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신문 인터뷰에서 이미 나온 것이라는 말이다. 오보라고 일축했던 신문 인터뷰 기사가 이제는 ‘이미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라는 주장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 후보의 신문 인터뷰도 사실이고, 7년 뒤 이를 오보라고 주장한 것도 사실이고, 광운대 특강도 사실이며, 이 특강에 대한 이 후보 쪽 해명도 사실이다. 이와 같은 상충되는 사실 속에서 진실을 가려내는 일은 바로 언론의 몫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언론이 이렇게 제시된 사실들을 징검다리로 삼아 진실에 이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언론은 한 유력 대선후보의 정직성과 관련된 비비케이 의혹의 진실을 가려내는 일이 자신의 역할이라는 점을 잊고 있는 것 같다. 언론이 포기한 이 역할을 검찰이 맡았었고, 이제는 특검에게 떠넘겨졌다. 언론은 팔짱끼고 있다가 검찰의 발표를, 그리고 특검의 발표를 또 하나의 사실로 보도만 하면 그만이라는 태도다.

대통령의 자격 중에서 으뜸가는 조건은 정직성일 것이다. 정직성이야말로 신뢰의 바탕이며 신뢰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오늘은 대선 투표일이다. 유권자들이 유력 후보의 정직성 여부에 대한 어떤 확신도 갖지 못한 채 투표장으로 가게 만든 큰 책임은 언론에 있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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