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8.03 19:12
수정 : 2010.08.03 19:12
|
성한표 언론인, 전 <한겨레> 논설주간
|
천안함 침몰원인을 둘러싸고 국론이 양분되었다. 북한의 소행이라는 민군 합동조사단의 결론을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 사이의 토론은 불가능하다. 심지어 조사단 보고서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좌빨’(좌파 빨갱이)이라고 몰아세우는 사람들도 있다. 좌빨에 대해서는 ‘박멸’밖에는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태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을 져야할 곳은 언론이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지난 7월27일치 <한겨레>는 ‘한국 해군 천안함 침몰원인에 대한 러시아 해군 전문가그룹의 검토 결과 자료’라는 문서를 단독입수했다고 보도했다. 이 자료에서 러시아 조사단은 “함선이 해안과 인접한 수심 낮은 해역을 항해하다가 우연히 프로펠러가 그물에 감겼으며, 수심 깊은 해역으로 빠져나오는 동안에 함선 아랫부분이 수뢰(기뢰) 안테나를 건드려 기폭장치를 작동시켜 폭발이 일어났다”고 추정했다는 것이다.
한겨레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천안함 조사결과 요약본을 7월 초 미국과 중국 두 나라에만 통보했다고 한다. 한겨레는 이 조사결과 요약본을 간접적으로 전달받은 현지 한국 공관이 이를 번역해 우리 정부에 급히 알렸으며, 신각수 외교통상부 제1차관이 지난 7월4일 콘스탄틴 브누코프 주한 러시아 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신뢰를 저버린 비우호적 처사”, “당황”, “실망” 등 외교적으로 강도 높은 표현을 동원해 항의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의 보도에 대한 정부 쪽 반론은 “러시아로부터 천안함 조사에 대한 결과보고서를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통보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부의 반론은 ‘사실’이다. 러시아가 미국과 중국에 통보한 내용을 현지 공관을 통해 간접적으로 입수했다면 직접 통보는 아니니까. 하지만 ‘진실’은 아니다. 한겨레 보도의 초점은 정부가 러시아로부터 직접 통보를 받았느냐가 아니라 러시아 조사단이 어떤 결론을 냈는가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반론은 일종의 동문서답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문·방송들은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 러시아 조사단은 지난 5월31일부터 6월7일까지 우리 정부의 협력 아래 한국에 머물며 천안함 침몰 사고를 직접 조사했었다. 따라서 러시아 조사단의 결론은 관심을 끌 만하다. 한겨레 보도내용을 자체의 취재력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는 한겨레를 인용해서라도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다. 취재경험이 조금이라도 있는 기자라면 확인 취재 자체가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사실도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신문·방송들이 러시아 조사단 관련 뉴스를 아예 다루지 않거나 정부 쪽의 동문서답형 반론만을 부각시키는 보도로 일관했다.
천안함 사태를 둘러싸고 벌어진 의견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 언론은 진실을 제시해야 한다. 북한의 소행이냐 아니냐를 가리는 일은 친북이나 반북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내부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기 위해 중요하다. 민군 합동조사단 보고서가 현재로서는 유일한 공식 결론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이 국민 전체를 납득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일부에서 비난하듯이 ‘좌빨의 억지’ 때문이 아니라, 공식보고서 자체에 많은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 논리의 문제점을 제시한 전문가들의 의견에 대해 언론은 진지하게 검토한 바가 없다. 오고 가는 주장들을 비교 분석하는 탐사보도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성한표 언론인, 전 <한겨레> 논설주간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