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8.10 19:59
수정 : 2010.08.10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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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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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이 흘렀다. 08년 08월 08일 <한국방송>(KBS) 이사회는 한국방송 건물 안으로 경찰을 끌어들였다. 그들의 철통같은 엄호 속에 법에도 없는 사장 해임안을 의결했다. 결국 공영방송 케이비에스는 권력의 손아귀에 들어갔고 권력 눈밖에 난 가수, 진행자, 시사비평가가 마이크를 빼앗겼다. 권력과 자본을 비판하던 대표적 프로그램이었던 <시사투나잇>과 <미디어포커스>는 간판을 내렸고, ‘탐사보도팀’이 사실상 해체됐다.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외치던 비판적 기자와 피디들은 제작 일선에서 대거 밀려났다. 뉴스와 보도는 정권의 미화와 홍보 방송으로 전락했다.
그런데 법원은 이렇게 군사작전처럼 해치운 사장 해임이 무효라고 판결했다. 해임이 불법이라는 뜻이다. 불법의 책임은커녕 오히려 행동대 역할을 했던 당시 이사들은 보은 인사로 곳곳에서 중요 자리를 차고앉아 있다. 게다가 방송사 안에서 정권에게 문을 활짝 열어준 자들은 요직과 간부직으로 올라앉았다. 공영방송을 고스란히 권력에게 봉헌한 사례를 톡톡히 받아 챙긴 것이다. 아직도 진상은 다 밝혀지지 않았다. 불법을 주도한 자들이 어떻게 치밀한 계획을 세웠는지 누가 어떻게 지시하고 개입했는지는 덮여있다. 불법은 저질러졌는데 저지른 몸통은 도통 보이지 않는다.
언론의 가장 주요한 임무는 진실을 찾는 일이다. 그런데 한국 최대의 방송이 자신을 둘러싼 의혹마저 오히려 감추고 있다. 이는 <문화방송>(MBC)도 다르지 않다. 이른바 ‘큰집 조인트 발언’으로 정권의 방송 개입의혹이 불거진 지 이미 다섯달이 다가온다. 김재철 사장은 사실무근이라며 김우룡 전 이사장을 명예훼손으로 형사 고소하겠다고 했으나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다. 어떻게든 뭉그적거리고 싶은 게다. 검찰이 조사에 나서면 혹시라도 실체가 드러날 것을 염려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죽은 권력에 대해서는 조그만 의혹에도 하이에나처럼 득달같이 달려들어 물어뜯는 그 야성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할퀴고 부풀리고 상상하던 좋은 솜씨는 만만한 사람들을 향해서만 쓸 참인 모양이다.
공영방송과 민주주의를 파괴한 자와 그 배후를 찾아서 책임을 묻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도 빠른 시일 안에 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이미 달콤한 권력의 향연을 다 누리기 십상이다. 나중에 역사의 심판이 의미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 이전에 현실에서 그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4년간 활동했지만 친일파 재산 중 아주 일부밖에 환수하지 못했다. 민족을 팔아서 치부하고 권력을 누린 대가를 묻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저 정의를 실현하고 민족 정기를 바로 세웠다는 상징적 의미 이상을 찾기 어렵다. 역사의 심판에만 맡기는 것은 오히려 무책임하고 한가로워 보인다. 바로 현실에서 톡톡히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꼭 그들에 대한 보복 차원이 아니다.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방송의 공영성과 민주주의를 팔아서 영달을 꾀한 자들을 제대로 심판하지 못하면 당장의 자리에 눈먼 자들이 부나방처럼 몰려들어 권력의 행동대로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그 과거를 되풀이한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평론가 조지 산타야나의 말이다. 그러나 기억하기 위해서는 진상이 낱낱이 밝혀지는 것이 먼저다.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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