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근행 <문화방송>(MBC) 노조 위원장(왼쪽 둘째)과 조합원들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본사 사장실 앞 복도에서 피디수첩 ‘4대강 수심 6m의 비밀’ 편 불방에 항의하는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
MBC 노사 대립서 ‘뜨거운 화두’
정권 입김받는 방문진 압박에 MBC경영진 흔들
구성원들 ‘외압 막고 독립수호 하자’ 자발적 도입
김재철 사장 개입행위는 ‘책임제 필요성’ 반증
<문화방송>(MBC) 노사 단체협약의 ‘국장책임제’가 다시 ‘뜨거운 화두’로 부상했다. 김재철 사장이 피디수첩 ‘4대강 수심 6m의 비밀’ 편을 방송보류시키는 과정에서 국장책임제를 두고 노사가 정면 충돌하면서다. 현 ‘피디수첩 사태’는 문화방송 소유구조에서 국장책임제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입증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7일 김 사장의 피디수첩 사전시사 요구를 제작진이 “자율성 침해”라며 거부할 수 있었던 근거는 단협의 국장책임제 조항이다. 현 단협 제23조 3항은 “편성·보도·제작상의 실무책임과 권한은 관련 국실장에게 있으며, 각 사의 경영진은 편성·보도·제작상의 모든 실무에 대해 관련 국실장의 권한을 보장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경영진의 불필요한 개입 가능성을 차단한 규정이다.
최근 국장책임제가 이목을 끈 것은 지난해 제8기 방송문화진흥회가 출범하면서다. 당시 여당 이사들은 업무를 시작하자마다 피디수첩 진상조사위원회(‘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한가’ 편) 구성과 단협 개정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엄기영 전 사장도 방문진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단협 개정 작업에 착수했고, 올 3월 취임한 김재철 사장은 취임 일성으로 단협 개정 방침을 밝혔다.
왜 일까. 정권이 ‘노영방송의 뿌리’로 국장책임제를 지목해 ‘사망선고’를 내리려는 이유는 국장책임제가 ‘문화방송 보도 독립성 및 공정방송 수호의 마지노선’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1988년 국장책임제 도입 배경엔 ‘정치적 외압’에 무력했던 문화방송 구성원들의 뼈아픈 반성이 자리하고 있다.
문화방송 보도국은 대한항공 격추사건이 벌어진 83년 9월3일의 머리기사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새마을청소 참여 소식을 내보냈다. 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 땐 기자의 특종취재를 보도하지 않는 대신, ‘운동권 여학생이 성을 혁명의 도구로 이용했다’는 검찰 수사 결과를 대서특필했다. 황선필·김영수·최창봉·강성구 등 역대 ‘낙하산’ 사장들이 불명예 퇴진한 까닭도 대부분 불공정 보도에 따른 반발 때문이었다.
문화방송 소유구조(대주주인 방문진 구성에 정권의 입김이 강하게 반영)상 정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경영진으로부터 편성과 제작을 분리할 필요성이 대두된 배경들이다.
향후 문화방송 내부에선 김 사장의 국장책임제 취지 훼손을 놓고 노사간 의견충돌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방문진 야당 쪽 이사들이 김 사장의 방송보류 결정을 문제삼을 태세다. 한상혁 이사(변호사)는 19일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현해 “(사장의 방송 보류 지시는) 방송법의 편성 독립 원칙을 정면으로 훼손한 행위”라며 23일 임시이사회에서 공식 문제제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 방송법 제4조인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 조항은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하여 (…)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2항)거나 “방송사업자는 방송편성책임자를 선임하고 (…) 방송편성책임자의 자율적인 방송편성을 보장하여야 한다”(3항)고 명시하고 있다.
사장의 권한 범위를 놓고 분명한 선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기본 취지는 편성과 제작의 자율성 보장이란 게 일반적 해석이다. 신태섭 동의대 교수는 “우리나라가 제작자율성 보장을 제도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게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구성된 99년 방송개혁위원회에서였으나,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해 타협한 결과 법안 문구가 모호해졌다”면서도 “‘정당성’이란 측면에서 판단하면 분명해진다. 김 사장의 방송보류 행위는 왜 제작자율성에 개입하는 내외부 세력을 차단해야 하는지를 드러내는 단적인 증거”라고 말했다.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도 “현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적 경험을 거치며 내부적으로 합의해온 약속과 원칙”이라며 “그 원칙을 경영진이 독단적으로 한 순간에 뒤집은 것은 엠비시 전통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비판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