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0.06 09:11
수정 : 2010.10.06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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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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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타임스>(이하 타임스)가 네번째 시민편집인(퍼블릭 에디터)으로 아서 브리즈베인을 임명했다. <워싱턴 포스트> 기자와 데스크를 거쳐 <캔자스시티 스타>의 편집인 겸 발행인을 지낸 59살의 중견 언론인이다. 타임스는 2003년 제이슨 블레어 가장의 표절기사 스캔들을 계기로 언론윤리를 철저히 준수하는 세계 최고 신문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시민편집인 제도를 도입했다. 빌 켈러 편집인은 브리즈베인을 환영하는 자리에서 타임스가 시민편집인을 계속 두고 있는 것은 신문에 대한 불신이 줄지 않는 상황에서 “언론윤리를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식지 않은 결의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시민편집인의 역할을 강조했다.
타임스가 내부 불평에도 불구하고 시민편집인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이 제도가 신문이 언론윤리를 준수하도록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시민편집인은 일반 신문에서 운영하고 있는 사내 인사의 기사 비평이나 외부 인사가 기고하는 옴부즈맨과는 성격이 다르다. 내부 옴부즈맨이 동료나 선후배의 기사를 엄격하게 비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제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또 외부에서 영입한 시민편집인의 경우도 비판을 구두나 메모 쪽지로 전달하는 정도로는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이 타임스 초대 시민편집인 대니얼 오크렌트가 경험을 통해 입증한 사실이다.
타임스의 시민편집인은 신문과 독자의 중간에서 신문을 상대로 독자의 불만을 전달하고 해결해주는 독자의 대변인이다. 시민편집인은 신문사에서 월급을 받지만 신문사는 그의 판단이나 글에 간여할 권리가 전혀 없는 독립적인 중재인 겸 심판관이다. 시민편집인 역시 독자를 대신해서 문제의 필자를 만나 해결책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판단을 신문에 발표할 수 있을 뿐 자기 판단을 신문에 강요할 권리는 없다. 문제는 시민편집인이 기사의 필자나 편집 간부와 접촉할 권리가 있고 그 결과를 지면에 공개할 수 있는 것이다. 기자도 자기의 과오가 신문에 보도되는 것이 좋을 리 없다. 따라서 시민편집인과 기자 사이에는 긴장관계가 흐를 수밖에 없다. 초대와 2대 때는 시민편집인에 대한 편집국의 저항이 강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긴장이 기자들로 하여금 언론윤리 준수에 더욱 예민하게 하고 지면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세계 최고의 신문인 뉴욕타임스가 언론윤리를 유지하는 데 시민편집인의 역할을 인정하고 이를 계속 두기로 결정했다면 언론윤리라는 말을 꺼내기 부끄러운 한국 언론, 특히 보수언론에 이 제도를 채택하게 할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주가 반대한다면 기자들이 앞장설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한국 신문은 언론 기능을 포기한 상태나 다름없다. 청와대가 총리 임명이 포함된 개각 뉴스에 엠바고를 요청하자 출입기자들이 이 중요한 뉴스를 청와대가 요구하는 대로 묵살해 버렸다. 시민운동 지도자 박원순 변호사가 국정원이 민간인을 불법사찰한다는 말을 했다고 해서 국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국정원이 그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패소 판결을 하는 등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사실 자체를 전혀 보도하지 않는 “일등신문”이 있는가 하면 사설 한 줄 쓰지 않는 보수신문이 있었다. 그런데도 이들 신문에 대한 독자들의 항의가 있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독자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시민편집인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시민편집인 제도의 도입을 진지하게 생각할 때가 왔다.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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