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0.13 09:46
수정 : 2010.10.1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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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표 언론인, 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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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권의 3대 세습에 대한 민주노동당 대변인 논평을 두고 진보진영 내부에서 치열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논란이 된 논평 대목은 3대 세습을 공식화한 북한 당 대표자회가 “긴장완화와 평화통일에 긍정적 영향으로 작용하기를 희망한다”는 부분이다. <경향신문>이 지난 1일치 사설에서 이를 비판했고, 이에 대응해 민노당 울산시당이 경향신문 구독을 끊겠다는 통보를 신문사 쪽에 보냈다. 이 논쟁에 지식인들까지 가세했다.
이번 논쟁은 북한에서 벌어진 정권세습 사태에 대한 진보세력 내부의 다양한 입장을 조율하고,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 하지만 논쟁이 생산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전제가 필요하다. 우선, 언론의 비판이 좀더 엄밀하게 이뤄져야 한다. 경향신문 사설은 “민노당은 3대 세습을 인정하겠다는 것인가”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러나 ‘인정’이라는 단어는 여러 의미로 사용된다.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는 뜻도, 동의한다는 뜻도 있다.
사설의 전체 맥락으로 보면 제목은 3대 세습에 동의하느냐는 뜻으로 읽혀진다. 반면에 민노당 논평의 문맥은 ‘3대 세습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민노당 논평은 “우리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해도”라는 표현을 통해 3대 세습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견해를 조심스럽게 내비치기도 했다. 한편 세습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민노당은 북한 새 지도부에 대해서는 대화를 제의할 수 없다는 딜레마(인정하지 않는 정권과의 대화)에 빠진다.
민노당 울산시당이 보인 감정적인 대응은 자제해야 한다. 논지에 대한 당사자의 동의 여부를 떠나 이 사설은 기본적으로 민노당에 대한 애정 어린 충고로 이뤄져 있다. 언론이 구미에 맞지 않는 보도를 한다고 해서 다수의 힘을 이용하여 신문 안 보기로 대응한다면, 그나마 몇 안 되는 진보언론의 숨통을 조이고 이들의 지지를 잃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리고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 이번 논쟁에 참여하고 있는 집단, 곧 신문과 정당, 그리고 지식인 등 세 부류를 한 묶음으로 ‘진보진영’, 또는 ‘진보세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당은 지식인 집단이나 언론과는 분명히 다른, 자신만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 언론은 기관지가 아니라면, 모든 사물을 비판적인 자세로 보는 것이 생명이다.
이번 논쟁의 특징은 서로의 고유한 영역에 대한 존중이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3대 세습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민노당이 공개적으로 표명해야 한다는 비판에 앞서, 공개적인 비판은 않기로 한 민노당의 전략적 결정을 먼저 고려했어야 한다. 3대 세습에 대해 우리 정부와 미국 정부가 공개적인 비판을 하지 않는 것은 세습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정권을 향해 대화의 문을 열어두기 위한 전략적 입장이다.
“비판하면서도 대화할 수 있다”는 주장은 많은 경우에 맞지만, 이번 경우에는 아니다. 북한 정권의 행태에 대한 비판과 새로 등장하는 체제를 부인하는 것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게다가 민노당은 북한 정권과의 직접 대화를 기대하고 있다. 정당과 언론, 그리고 지식인 사회가 서로의 입장을 존중함으로써 모처럼 진행되고 있는 진보진영 내부의 논쟁에서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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